“영화를 보는 내내 울었어요. 책으로만 알던 내용을 영화로 보면서 또래의 친구들이 이같은 아픔을 겪었다니···”(중학생 김유진·15·여)
“일본군의 만행에 보는 내내 마음 아프고 화가 나서 몸을 잔뜩 웅크리고 봤습어요. 영화가 끝나고 온몸에 힘이 쭉 빠졌어요.”(회사원 황보란·28·여)
일제 강점기 위안부 피해자를 다룬 영화 ‘귀향’이 영화 속 나비의 작은 날개짓처럼 세대를 뛰어넘어 온 국민들의 눈시울을 적시고 있다. 역사책으로만 아픈 과거를 접한 2030세대는 물론이고 10대들도 적극적으로 영화관람에 동참하고 있다.
지난 26일 서울 메가박스 강남점에는 영화 시작인 오후 7시 전부터 일찌감치 2030세대를 중심으로 긴 행렬이 시작됐다. 친구와 같이 영화를 보러온 10~30대는 물론이고 부모와 함께 영화관을 찾은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한국사 교사인 대광고등학교 최태성씨가 자비를 털어 ‘귀향’ 무료대관(5개관·434석) 행사를 진행한 이날 사전접수가 이뤄졌음에도 현장에서 선착순으로 영화를 보려는 160여명의 인파가 몰렸다. 영화 시작 40분 전에 이미 선착순 입장이 마감될 정도였다.
현장을 지켜보던 최 씨는 “영화 상영 전까지 모두 5000여명이 신청을 했다”며 “아쉽게도 많은 분들을 모시지 못해 안타깝지만 많은 분들이 그 시대를 기억할 수 있는 시간이 되서 감사할 뿐”이라고 말했다. 영화를 관람한 회사원 김자영 씨(31)는 “나라를 잃어버린 시대에 희생양이 되어버린 어린 소녀들은 아무 죄가 없었다”며 “한창 꽃다울 나이의 어린 소녀들이 일본 군에게 처절하게 짓밟히는 모습은 차마 눈으로 보고 싶지 않을 만큼 마음이 아렸다”고 안타까워했다.
해외 영화 상영을 돕겠다는 목소리도 감지된다. 노선주 프랑스 디종 한글학교장(45)은 “프랑스에서 상영할 계획이 있으시면 연락을 부탁한다”면서 “모금 운동을 하고 상영관을 확보해 프랑스 상영에 필요한 일을 추진하려고 한다”고 전했다.
귀향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흥행세’로도 이어지는 양상이다. 개봉일인 24일에만 15만4728명이 관람을 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어 27일에는 29만6524명이 관람해 누적관객이 75만6663명을 기록했다. 손익분기점 관객 수(60만명)를 나흘만에 크게 뛰어넘었다.
심지어 200만 관객을 모은 할리우드 영화 ‘데드풀’마저 이날 10만명 이상의 격차로 밀어내, 4일 연속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상영 스크린 수가 늘고 있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24일 전국 512개 스크린에서 출발해 27일 769개로 스크린 수가 257개 늘어났다. 상영횟수도 2130회(24일)에서 3215회(27)로 1100회가 증가했다. 영화계 관계자는 “이런 추세라면 상영 첫 주 100만 관객 돌파도 무난할 것”이라며 “다양성 영화로는 이례적으로 480만1818명이라는 대성적을 거둔 ‘님아 그 강을 건너지마오’처럼 500만 관객 달성도 가능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귀향’의 흥행 배경에는 긍정적인 관람 소감이 급속도로 공유·확산되고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영향력이 자리잡고 있다.
실제 6700명이 평점 평가에 참여한 한 포털 사이트에서는 9.55를 기록해 역대 영화 중 가장 높은 평점 1위에 오른 상태다. 이곳에는 “영화가 널리 알려져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가 위안부 할머니들의 마음 아픈 현실을 알았으면 좋겠다”는 소감부터 “진심으로 꼭 1000만 영화가 되어야 할 영화”라는 반응 등이 베스트 감상평으로 올랐다. 또 다른 포털에서도 평점 9.8을 기록해 역대영화 평점순위 1위를 기록했다.
당초 ‘귀향’은 수익성 문제로 제작 과정부터 투자자 확보에 애를 먹었다. 개봉 과정에서도 국내 4대 배급사의 외면 속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소규모 배급사(와우픽쳐스)의 10억원 투자로 배급을 할 수 있게 됐다. 영화 업계에선 무모한 배급이라는 목소리가 많았지만, 이 작은 배급사는 영화계의 예측을 보란듯이
영화계 관계자는 “직관적인 젊은 세대들에게 귀향은 대중예술인 영화라는 채널을 통해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을 느끼는 최초의 간접경험 기회”라며 “이들의 소감 글이 SNS를 통해 급속도로 퍼져 나가면서 관람객의 발걸음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강봉진 기자 / 김시균 기자 / 황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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