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 호텔에서 ‘세기의 대결’로 주목받은 이세돌 9단과 구글의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와의 대국이 열렸다. 대국장 밖 미디어 해설실에서 내외신 취재진들이 중계화면을 보면서 해설을 듣고 있다. <김호영기자> |
과학자들의 상당수는 대국 전 이세돌 9단의 승리를 점쳤다. 이세돌 9단이 상식적으로 예측하기 어려운 수를 두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세돌 9단을 ‘마법의 이세돌’이라 부르는 이유다. 알파고가 지난해 10월 유럽 바둑 챔피언인 판후이를 이기면서 자신의 실력을 뽐냈지만 프로라고 하기에는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많은 기보를 통해 학습했다 하더라도 이세돌 9단이 갖고 있는 직관, 상상력을 이겨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알파고는 불과 5개월만에 자신의 능력을 이세돌과 맞먹는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9일 대국을 지켜본 박형주 아주대 수학과 석좌교수는 “인공지능의 발달 속도가 상당히 빠른 것 같다”며 혀를 내둘렀다.
지난 2007년 IBM에 입사해 제퍼디 퀴즈쇼에서 우승한 인공지능 ‘왓슨’ 개발에 참여했던 감동근 아주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초반 이세돌 9단이 변칙적으로 접근하며 알파고를 시험했다”며 “하지만 알파고가 침착하게 대응하며 풀어나갔다”고 설명했다. 감 교수는 바둑 아마 7단이다. 그는 지난해 10월 판 후이와의 대국에서 보여준 알파고와 지금 알파고는 차원이 다르다고 덧붙였다.
알파고는 3000만 건이 넘는 기보를 입력한 뒤 이를 스스로 학습하는 ‘딥러닝’ 기법이 적용됐다. 바둑에서 나올 수 있는 경우의 수는 10에 170제곱으로 우주에 있는 모든 원자를 합친 수보다 많다. 경우의 수가 많은 만큼 이를 모두 시뮬레이션 할 수 없기에 알파고는 기존 기보를 통해 형세를 읽고, 무작위로 추출한 경우의 수를 시뮬레이션 한다. 인간의 직관을 흉내내는 판세 이해 능력, 가치망을 통해 형세를 판단하는 능력 등 알파고는 인간의 뇌를 가장 가깝게 흉내낸 인공지능이다.
하지만 지난 5개월 동안 알파고는 학습을 통해 프로 9단에 맞먹는 능력을 보유했다. 감동근 교수는 “알파고가 능력을 키우려면 프로기사들의 기보를 많이 입력해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아 알파고1, 알파고2 등 자신들끼리 시합을 통해 능력을 키워온 것 같다”며 “상당히 많이 진화했다”고 설명했다.
알파고는 지난해 10월 이후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많은 바둑 고수들과 대결을 펼쳐온 것으로 알려졌다. 조혜연 9단은 “딥마인드라는 아이디를 갖고 있는 ‘누군가’가 500여판의 바둑을 두며 실력을 쌓아왔다”며 “랭킹이 올라가는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 알파고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딥마인드의 기보를 분석한 결과 프로9단 정도의 수준을 갖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바둑 아마 3급인 이화여대 컴퓨터공학과 박승수 교수도 대국을 지켜보며 “기계가 둔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며 “생각보다 훨씬 강했다”고 말했다. 그는 “바둑도 하나의 대화라고 본다면 인공지능의 궁극적인 테스트로 불리는 ‘튜링 테스트’를 바둑에 적용할 때 분명 프로급 기사로 통과될 것”이라고 말했다. 튜링테스트는 기계가 인공지능을 갖췄는지를 판단하는 실험이다. 컴퓨터와 대화를 나눈 사람이 컴퓨터를 사람으로 느꼈다면 튜링테스트를 통과했다고 한다. 지난 2014년 영국 레딩대가 개발한 컴퓨터 프로그램인 ‘유진’이 튜링테스트를 통과했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박승수 교수는 “바둑에서 수읽기, 형세판단, 감각, 스타일 등을 감안할 때 원래 컴퓨터가 수읽기 빼곤 다 힘들다고 했는데 그런 편견을 완전히 무너뜨렸다”고 말했다.
인공지능은 1967년부터 인류와 체스 대결을 펼치며 능력을 뽐내왔다. 1997년 세계 체스 챔피언을 이기고 2011년에는 인간과의 퀴즈 대결에서도 승리했다. 컴퓨터 연산능력의 급격한 발전과 빅데이터 시대의 도래가 인공지능에게 날개를 달아줬다. 전 세계 슈퍼컴퓨터의 연산 능력을 1위부터 500위까지 나열했을 때, 500위에 포함되는 슈퍼컴퓨터는 5년 뒤 노트북으로도 구현이 가능하다. 체스 챔피언을 꺾은 딥블루보다 갤럭시 S6의 연산처리 능력이 3배 이상 빠르다.
체스, 퀴즈, 바둑 등의 대결을 통해 인류와 두뇌 싸움을 벌인 인공지능은 예술분야에도 진출을 꾀하고 있다. 구글의 인공지능 ‘딥드림’이 그린 추상화 29점이 9만 7000여달러에 판매됐다. 미국 예일대가 개발한 인공지능 ‘쿨리타’는 음계를 조합해 음악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샤오밍과 페이스북,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전 세계 IT 회사들은 앞다퉈 인공지능을 이용한 개인 비서 프로그램을 개발해 선보이고 있다.
알파고의 인공지능은 단순히 바둑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감동근 교수는 “알파고가 갖고 있는 알고리즘이 구글이 갖고 있는 검색 엔진에 적용될 수 있다”며 “더 정확하고 빠른 검색, 사용자에게 맞는 검색 등에 활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조금 더 미래를 본다면 인공지능을 로봇에 적용할 수 있다. 구글은 인공지능 회사인 딥마인드를 인수하기 전, 로봇 회사 15곳을 인수했다. 인수한 회사 중에는 지난 2013년, 로봇공학챌린지(DRC)에서 2등과 월등한 차이로 우승한 일본의 섀프트도 포함됐다. 구글이 개발한 인공지능을 로봇에 적용할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는 이유다.
인공지능의 발달이 이처럼 빠르게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 ‘자의식’을 갖고 있는 ‘강인공지능’의 개발은 어렵다. 인간의 자의식이 어떻게 형성되는지조차 인간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에는 1000억개의 신경세포(뉴런)와 100조개에 이르는 시냅스가 존재한다. 이들이 어떻게 상호
전문가들은 이번 대국을 보며 “지배할 것인가, 지배당할 것인가”로 보는 것 보다는 공존을 생각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감동은 교수는 “인공지능의 지배가 아닌, 인간이 만드어낸 연구결과가 가장 재능있는 인간을 뛰어넘을 수 있는지 바라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원호섭 기자 / 이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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