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억 원에 가까운 재산을 가진 치매노인에게 접근해 위장결혼한 뒤 모든 재산을 빼돌린 사기단이 경찰에 붙잡혔다. 고령의 피해자는 비통해 하다 지난달 숨졌다.
경기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15일 재력가인 A씨(81·사망)에게 접근해 재산을 빼돌리 혐의(사기 등)로 이모씨(62·여)를 구속하고, 공범 이모씨(76)와 오모씨(61)를 같은 혐의로 불구속입건했다고 15일 밝혔다.
이씨는 2013년 7월 치매를 앓아 판단력이 떨어지는 A씨에게 “나는 대통령 친구다. 대법원 판결을 뒤집어 줄 수 있다”고 접근한 뒤 공범들과 재산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피해자는 가족과 상속재산 소송을 벌여 대법원 판결까지 받아놓은 상태였다. 이씨는 “교회에서 A씨를 우연히 만났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경찰은 누군가 A씨가 처한 상황을 알려줬을 가능성이 높아 배후에 대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경찰조사 결과 이씨는 A씨에게 존재하지 않는 의료재단·한의원 이사장 직함을 사용하며 “여생을 돌봐주고 재산을 지켜주겠다”며 환심을 샀다. A씨가 안심한 사이 이씨 등은 2013년 11월부터 2014년 3월까지 3회에 걸쳐 A씨와 미국으로 함께 건너가 “재산을 보호하고 소송비용을 조달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A씨 소유 미국 펀드 2개를 매각해 2억 5000만 원을 챙겼다. 내친김에 이씨는 2014년 1월 공범 2명을 증인으로 내세워 아예 혼인신고서를 작성해 A씨와 법률상 부부가 되었다. 같은해 9월까지 8개월 동안 10여 차례에 걸쳐 전 재산 90억 원을 빼돌린 뒤에는 서울가정법원에 이혼을 신청해 그해 10월 이혼 조정이 결정됐다.
경찰 관계자는 “재산범죄에서 친족은 처벌을 면할 수 있다는 규정을 적용받기 위해 위장결혼까지 한 사건”이라면서 “특히 피해자는 피의자들이 주거지·전화번호 변경 등으로 가족 접근을 막아 적절한 보호를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혼인신고를 하고 A씨와 한집에 살면서도 A씨 자녀들에게는 “그저 도와주는 사람”이라면서 혼인 사실을 숨겼다. A씨의 주거지를 옮기거나, 휴대전화 번호를 5차례나 바꾸는 방법으로 가족들의 접근을 막기도 했다. 이씨 등은 이렇게 빼돌린 돈으로 자신과 가족 명의로 18건 34억 원 상당의 부동산에 투자한 것으로 드러났다. 명품 가방과 고급 양주 등도 주거지에서 다수 발견됐다.
2008년 뇌졸증 진단뒤 치매가 진행된 A씨는 사기 사건 이후 정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치매증상이 더 심각해 진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는 A씨 가족들이 이씨를 상대로 혼인무효소송을 벌여 법률행위 자체를 무효화 한 뒤, 피의자들을 상대로 부동산 반환 소송을 벌이면 일정부분 피해금 회수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홍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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