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차림은 오로지 ‘배둘레햄’을 가리기 위한 목적으로 변한지 오래다. 넉넉한 셔츠에 레깅스 또는 목 폴라에 바지 차림, 무릎까지 오는 두꺼운 패딩코트가 내 겨우내 모습이었다. 출산 후 늘어난 뱃살을 가리기 위해 ‘이 만한 패션은 없다’고 스스로 위안 삼으며 말이다.
회사 복직 후 쇼핑을 안 한 것은 아니다. 한 칫수 늘어난 체형 탓에 할 수 없이 옷을 사야했다. 그런데 바뀐 체형과 더불어 옷을 고르는 기준이 변했는데, 바로 살 옷이 ‘면 100%’인가를 보는 것이다. 그리고 반드시 목이나 어깨 주변에 단추나 장식이 없는 지를 꼼꼼히 챙겼다. 내 목에 찰싹 달라붙어 떨어질 줄 모르는, 졸리기만 하면 가슴팍에 얼굴을 비비며 파고드는 아이로 인해 새로 생긴 기준이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디자인보다는 아이를 돌보는데 편한 실용적인 옷 위주로 사게 됐다.
그런데 분명 아이와 나 둘 다에게 편한 옷차림과 헤어스타일이라고 자부해왔던 내 모습이 요즘 영 만족스럽지 못하다. 거울 속에 보이는 내 모습이 어딘가 나이 들어보이고, 옷 태가 안나며 도무지 예뻐보이지가 않는다. ‘예전엔 그러지 않았는데’라며 화려한 스팽글과 코사지 장식이 있는 옷을 과감히 구매해 볼까도 한다. 하지만 어쩐지 아기 엄마인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아 망설인다. 내 옷을 비싸게 주고 살 바에야 그 돈으로 아이 옷을 몇 벌 더 사는 게 낫다는 쪽으로 생각이 자꾸 기운다. 그러면서 마음 한 켠에서 스멀스멀 차오르는 이 헛헛한 기분.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이같은 고민을 한 육아 선배에게 털어놓자 1초도 안돼 돌아온 답변, “당장 사고 싶은 옷 좀 사고, 미용실도 가고 그래” 쿨했다. 사실 선배의 이런 답변은 의외였다. 7살과 6살 연년생 아이를 키우며 평소 짠순이로 통하는 선배에게 내가 기대했던 답은, “그래, 아껴야 잘 살지. 아이 돌보면서 멋 내는 것은 무리야”내지는 “아줌마가 예쁜 옷 입어봐야 어딜 가겠니”라는 말이었다(내 선택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 그런데 놀랍게도, 선배는 그냥 질러보라고 한 것.
최근 회사에서 10년 근속 기념 휴가를 받아 큰 마음 먹고 여행을 다녀왔다는 선배는 여행지에서 느낀 게 참 많았다고 했다. 결혼하자마자 애를 낳아 직장과 육아 생활을 병행하며 10년 동안 정말 앞만 보고 달렸다고 했다. ‘경계녀’ 즉 경력을 계속 이어나가는 워킹맘으로 살아 남기 위해 자신을 돌아볼 틈은 없었다는 선배는 여행지에서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고 고백했다. 모처럼 생긴 여유에 자신을 돌아보니 그렇게 궁상맞게 살지 않아도 됐었는데, 이렇게 좋은 경치가 있었는데 이를 모르고 살았던 모습이 후회돼 울었다는 것이다.
얘기를 듣던 나도 울 뻔했다. 이 선배만큼은 이런저런 고민 없이 워킹맘으로서 일과 육아 모두 잘 해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언제나 자신감이 넘쳐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단순히 쇼핑 얘기가 아니라, 현재 내가 원하는 것에 충실하라는 선배 조언의 울림은 참 컸다.
돌이켜보면 난 고등학생 시절부터 봄을 탔다. 봄만 되면 괜히 마음이 설레고, 만발하는 봄꽃 구경하러 이곳저곳 놀러가고 싶었다. 대학생이 돼 산 옷 들 중 유독 봄 옷이 많은 것은 겨울 내 움츠려있던 내가 활동적으로 변하며 쇼핑을 즐겨해서다. 어쩌면 요즘 느꼈던 헛헛한 기분은 이런 봄을 나 혼자 타고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엄마라는 타이틀에 갖혀 어느 새 성큼 다가온 봄기운을 미처 몰랐던 것은 아닐까.
물론 ‘룰루랄라’ 봄 기운을 만끽하기에 이제 내 옆에는 돌쟁이 아들이 있다. 어딜가도 2인 1조다. 그래서 육체적으로 힘들 때도, 제약을
[디지털뉴스국 방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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