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을 수사중인 검찰이 살균제 제조사인 영국계 다국적기업 의뢰를 받아 실험을 수행한 서울대 수의과대학 연구팀의 보고서가 ‘이중 조작’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4일 확인됐다. 검찰은 서울대뿐만 아니라 옥시레킷벤키저(이하 옥시) 측이 실험을 맡긴 호서대 연구팀 보고서 역시 조작된 정황도 발견해 연구 책임자를 조만간 소환조사할 방침이다.
4일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이철희 형사2부장)은 지난 2월 옥시에 대한 추가 압수수색에서 서울대 연구팀이 실험한 원데이터 자료를 압수해 옥시 측이 검찰에 증거자료로 제출한 보고서와 비교한 결과, 이 데이터가 원데이터와 차이가 나는 것을 발견해 조작 의혹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 수사 결과 옥시 측은 서울대 C교수 연구팀이 충분한 실험을 진행하지 않은 상태에서 원데이터를 무단으로 가져가 “살균제가 인체에 무해하다”는 결론에 짜맞춰 검찰에 증거 제출했다는 정황이 포착됐다. 충분한 검증을 거치지 않은 미완의 실험이었을 뿐만 아니라, 통계 등 실험보고서 내용 일부가 회사에 유리하도록 애초 원데이터와 다르게 변형·가공된 정황도 발견됐다.
검찰은 이 같은 ‘이중 조작’ 의혹에 대해 서울대 C교수와 연구원들을 소환 조사했으며 연구진이 이미 옥시 측이 제출한 실험결과가 ‘충분한 실험을 거치지 않은 채 조작된 정황’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점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에 따라 실험보고서가 조작 정황을 확인하기 위해 옥시 관계자들에 대한 소환 조사를 통해 사실 관계를 확인할 계획이다. 또 조작된 보고서가 증거자료로 제출된 정황을 알면서도 묵인한 연구진에 대해서도 형사처벌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적용 가능한 법리를 검토 중이다.
검찰은 서울대뿐만 아니라 옥시 측의 의뢰를 받아 실험한 호서대 생명보건과학대학 Y교수 연구팀의 보고서도 왜곡됐다는 의혹을 갖고 경위를 파악하는 중이다. 현재 외국에 체류 중인 Y 교수가 귀국하는대로 소환조사를 벌여 사실 관계를 확인할 계획이다.
옥시레킷벤키저는 살균제의 인체 유해성을 입증한 2011년 질병관리본부 동물실험 결과를 반박하기 위해 서울대와 호서대 등 2개 연구기관에 각각 다른 실험을 의뢰했다. 따라서 이 두 가지 실험 모두 허위라는 의혹이 검찰 수사로 밝혀지면 “살균제 유해성이 없다”는 옥시 측 주장은 신빙성을 잃게 된다.
검찰은 수사의 최대 관건인 ‘살균제 유해성 분석’을 마치는대로 이르면 이달 중순부터 4개 제품의 제조사와 유통사 관계자들을 소환조사할 방침이다. P
가습기 살균제 사건으로 2011년 임산부와 영유아 143명이 원인 미상의 폐 손상으로 숨졌다. 현재 검찰은 사망자를 비롯한 피해자 170여명에 대한 피해 사례도 전수 조사해 현재 80% 가량 마친 상태다.
[김윤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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