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의 의무는 지지 않은 채 국내에 머물면서 사실상 이중 국적 혜택을 누리고 있는 이른바 ‘불성실 국적포기자’에 대해 정부가 상속, 증여세 등을 중과하는 방안 마련에 나선 것으로 10일 확인됐다.
병무청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국적 변경 등을 통한 병역회피자(후천적 병역기피) 제재 방안’ 연구용역을 최근 발주했다. 정부의 정책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우선 한국에서 출생한 이후 외국 국적을 취득하면 이중 국적 금지의 원칙에 따라 예외없이 국적을 자동 상실하도록 하는 현행 규정을 고쳐 병역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을 경우엔 이중국적을 허용해 입영 대상자로 분류하는 방안이 담겨 있다. 외국 국적을 취득해도 병역 기피 목적을 달성할 수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또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한 군 미필자가 다시 국적을 재취득할 수 있는 나이를 현행 41세에서 상향조정하는 방안도 용역 대상에 포함됐다.
병무청은 이와함께 병역 회피를 위한 국적포기자에 대해 상속·증여세 중과 등 경제적 불이익을 주는 방안에 대해 함께 검토 중이어서 주목된다.
병무청 관계자는 이날 “병역의무를 해소하지 않은 상태에서 국적을 이탈하거나 상실한 사람에 대해 상속세와 증여세 등을 중과세하는 방안을 강구중”이라며 “현행 병역법 제76조에서도 병역기피자에 대해 국내 취업과 각종 인허가 업종 진입 제한 등 경제 활동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병역 회피용 국적포기자에 대해 상속세와 증여세를 중과세하겠다는 것은 일종의 한국판 ‘국적포기세’ 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미국은 역외 탈세를 막기 위해 지난 2008년부터 국적을 포기할 경우 출국 시점을 잣대로 모든 재산을 양도하는 것으로 간주해 이른바 국적포기세를 부과하고 있다.
병무청은 이와 함께 국내 조달사업 참여를 제한하고 재외동포 체류자격(F-4) 및 취업비자 발급을 제한 해 국내 체류 자체를 어렵게 하는 방안까지 검토 대상에 포함시켰다. 특히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표상인 고위공직자들의 자녀가 군 입대를 앞두고 외국 국적을 취득하는 경우 해당 고위공직자의 임용을 배제하거나 징계하는 등 불이익을 주는 방안도 연구 대상에 포함시켰다.
병무청이 이처럼 후천적 국적포기자에 대해 강도높은 제재 방안 마련에 나선 것은 권리만 누리려는 병역기피자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병무청에 따르면 지난 2011년부터 2015년 7월 말까지 국적을 포기해 병역을 면제받은 사람은 무려 1만6147명에 이른다. 국적 포기로 병역의 의무를 면제받은 숫자가 2012년 2468명, 2013년 2856명, 2014년 3875명 등 해마다 늘고 있는 추세다.
한국에서 태어난 이후 캐나다 국적을 취득한 A씨(35세)가 대표적이다. 그는 군입대를 앞두고 한국 국적을 포기했지만 캐나다 여권으로 2006년 10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총 8차례 출입국하며 약 3년 5개월 동안 한국에 머물렀다. 군 입대를 피할 목적으로 한국 국적을 포기한 뒤 당당하게 국내에서 생활하며 ‘권리’만을 누린 셈이다.
2010년 개정된 국적법은 법무부장관에게 대한민국에서 외국 국적을 행사하지 아니하겠다는 뜻을 서약한 복수국적자만에 대해서만 복수 국적을 허용하고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대한민국 국적은 상실된다. 군 복무를 마치고도 이중국적을 유지할 수 없는 불합리한 점은 개선됐지만, 역으로 군 복무를 안하고 사실상 거주를 하더라도 불이익은 없는 셈이다.
병무청 관계자는 매일경제와 통화에서 “국적 변경으로 병역을 피하는 사람들에 대한 실효성 있는 제재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연구 용역을 의뢰했다”며 “보고서가 완성되면 이를 토대로 (정부와 국회에서) 다양한 입법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 관계자는 “유승준이 한국 땅을 밟지 못한 지 14년이 지났지만, 제2, 제3의 유씨 사례를 막을 방안은 여전히 없다”며 “병역 기피를 목적으로 국적을 포기하는 국적이탈자들이 여전히 많이 발생하고 있음에도 병역 기피 목적인지를 확실하게 입증하기 힘든 실정”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관련 연구용역 결과가 나오는 올 하반기에 정부는 헌법학자 등 법조계 자문을 거쳐 정치권과 집중적인 입법 논의를 시작할 전망이다. 국적 회피로 추정되는 사례들에 대해 정부가 어떤 방식으로 입증을 할지, 경제적 제재 방안이 헌법 상 ‘차별금지’ 원칙의 테두리에서 이뤄지는지 여부 등이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복수국적을 허용하지 않는 법 규정 때문에 병역 의무에서 자유로워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계속되는 만큼 입법보완 작업은 불가피한 상황”며 “군 미필자
한편 지난해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 병역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국적을 포기한 사람들이 국적을 재취득하지 못하도록 하는 국적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바 있다
[서태욱 기자 / 박윤구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