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 모집인으로 큰돈을 벌었다는 지인 얘기에 저도 뛰어들었죠. 영업분야에서 경험을 쌓고 용돈도 벌 수 있다기에…”(취업준비생 A모씨)
“구직사이트에 이력서를 올리고 나서 카드사로부터 전화를 받았어요. (영업을) 잘하는 사람들은 억대 연봉을 받는다는 말에 혹했습니다.”(취업준비생 B모씨)
얼어붙은 취업 시장에서 고수익의 욕망에 ‘신용카드 모집인’에 뛰어들었다가 낭패를 보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기본급도 없는 열악한 처우임에도 카드사들이 이를 고연봉 직종으로 포장해 유치 작업에 열을 올리면서 무리한 영업활동으로 사회관계까지 망치는 ‘불나방’ 취준생들을 양산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해 시중은행 면접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신 취준생 A씨는 지인의 소개를 통해 현대카드 모집인(PSC·Premium Sales Consultant) 생활을 최근 시작했다. ‘매달 10명씩 1년 동안 적중고객을 모집하면 연봉 8000만원을 벌 수 있다’라는 카드회사의 솔깃한 설명이 그를 업계로 이끌었다.
A씨는 육성센터에서 주요 사립대학 졸업자, 대기업 퇴사자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지만 현재까지 남아있는 사람은 절반에 불과하다. 그는 “사회초년생일수록 영업 초기에 인적 네트워크가 부족해서 어려움을 겪고 포기할 수밖에 없다”며 이미 떠난 동료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자신도 오전에는 육성센터에서 교육을 받고 오후에는 개인사업자를 대상으로 카드영업을 실시하는 이른바 ‘돌방’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다. 가끔씩 이마트로 나가 제휴카드 판촉행사를 진행하고 집으로 돌아온 날이면 지쳐 쓰러지기 일쑤다.
‘연봉 8000만원’이라는 꿈의 소득과 달리 A씨와 같은 신용카드 모집인은 카드사와 직접 고용계약을 맺은 피고용인이 아니라, 위촉판매계약을 체결한 ‘위촉직’으로 신분이 극히 불안정하다. 급여체계도 기본급 대신 판매에 따른 인센티브로만 이뤄지고 4대 보험 등을 제공받지 못한다.
월별 판매 건에 따라 보수를 받기 때문에 정기적인 수입원이 보장되지 않아 높은 연봉을 기대하고 카드 모집인으로 뛰어든 청년들은 다시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취준생 B모 씨의 경우 취업사이트 등재된 이력서를 보고 연락한 한 카드사의 제안에 모집인 세계에 발을 디뎠다가 사회관계에서 막대한 ‘마음의 빚’을 떠안았다고 자조한다. 그는 “왜 그런 걸 나에게 이야기하냐, 이런 이야기할 거면 나한테 연락하지마라는 등 친구, 친척들의 매몰찬 말에 나도 상처를 입고 상대방도 내 연락을 꺼린다”고 한숨을 쉬었다.
문제는 열악한 처우 현실을 장밋빛으로 포장해 신용카드 모집인 유치에 열을 올리는 행태가 카드업계에 만연해 있다는 점이다.
취준생들이 구직사이트에 이력서를 올리면 카드사 영업센터에서 해당 구직자에게 전화나 문자로 ‘러브콜’을 보낸다. 또 지역 영업센터별로 취업카페나 온라인 구직사이트에 채용공고를 내고 모집인을 유치하고 있다.
지난 14일 롯데카드 명동지점은 ‘월평균 700만원 이상의 수당 수령자가 지점 내 다수 근무하고 있고 휴학생과 취업준비생들도 대환영한다’며 한 구직 사이트에 설계사 모집공고를 냈다. KB국민카드 노원지점은 지난해 9월 초대졸 이상의 청년들을 대상으로 카드영업 전문인(Young Credit Planner) 프로그램 참여인원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유명 취업카페에 올렸다.
하지만 이들 공고를 자세히 살펴보면 ‘최고의 수수료 체계’, ‘월 평균 000만원 이상의 수당’ 등 자극적인 이야기만 나열할 뿐, 모집인의 급여체계나 위촉판매직 신분에 대한 설명은 찾을 수 없다.
이 같은 업계의 무리한 모집인 유치 작업이 포화상태에 이른 신용카드 발급 상황과 무관치 않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신용카드 발급건수는 2013년 1억202만장, 2014년 9232만장, 2015년 9309만장 등 매년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2011년 5만100명에 달했던 신용카드 모집인도 2014년 3만4477명으로 크게 줄어드는 등 카드사들은 영업을 할 모집인 유치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상 최악의 구직난 속에서 저임금에도 “직장만 달라”는 청년 취준생들의 열악한 처지를 카드사들
지난 3월 서울 소재 한 대학에서 카드 모집인 설명회를 주최한 국내 대표 카드업체는 취준생들에게 “최근 신용카드 시장이 포화되면서 신용카드 모집인의 활동이 어려워졌지만 대졸자를 포함한 사회초년생들에게도 ‘동등하게’ 기회를 주고 있다”고 홍보했다.
[박윤구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