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부산으로 직장을 옮긴 A씨는 보증금 1억3000만원에 2년간 아파트 전세 계약을 맺었다. 계약금으로 1000만원을 먼저 내고 3개월 뒤 잔금 1억2000만원을 치르고 입주했다. 집주인이 세금을 내지 않아서 아파트가 압류된 사실을 안 것은 이후의 일이다. 계약 당시에는 등기사항증명서에 아무런 표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공매 절차 끝에 다른 사람이 집을 구입했고 A씨가 받아든 돈은 145만원에 불과했다.
#B씨는 10년간 모은 돈으로 지난해 처음 자신의 이름으로 된 전셋집을 얻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B씨는 자신이 받은 계약서가 3500만원짜리 원래 전세계약이 아니라 보증금 500만원 월세로 둔갑했다는 사실을 한참뒤에야 알아챘다. B씨가 모르는 사이 공인중개사는 다른 사람과 전세계약을 다시 맺었다. 황급히 거래를 맡긴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찾아갔지만 해당 중개인을 찾을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앞으로 이같은 억울한 일이 사라질 전망이다. 대법원이 내년부터 부동산 등기부등본을 한 장으로 줄이면서 부동산 거래에 필요한 정보를 관련기관에서 각각 확인하는 수고를 덜어줄 예정이다. 또 기존에는 제공되지 않은 집주인의 체납정보 등도 알 수 있게 된다. 이중계약 등 등기제도의 허점 탓에 거듭돼 온 문제를 뿌리 뽑기 위해 ‘등기 전 거래’를 보호하는 방안도 마련된다.
대법원 법원행정처(처장 고영한 대법관)는 이같은 내용의 ‘부동산 안전거래 통합지원 시스템(일명 등기선진화방안)’을 내년부터 순차적으로 시행한다고 2일 밝혔다. 국민이 부동산 거래 시 각종 권리를 안전하게 취득할 수 있도록 부동산 등기 제도를 58년만에 사용자 중심으로 대폭 바꾸는 것이다.
등기선진화 방안에는 △권리종합정보제공 △등기 전 거래보호 △부동산전자계약 활성화 △원인증서(거래계약서)-등기연계 등이 주된 내용으로 포함된다.
종전에는 부동산 거래에 앞서 등기부등본을 발급해 해당 부동산은 누구 소유인지, 은행이 근저당권을 설정했는지, 채권최고액은 얼마인지 등을 확인했다. 그 밖에도 토지·건축물대장 정보, 확정일자, 체납정보 등 최소 8가지 이상 정보를 알기 위해서 별도의 절차를 거쳐야 했지만 내년부터는 산재된 정보를 등기부 한 장(권리종합정보)으로 종합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르면 2018년부터는 등기 이전의 거래 과정을 보호하기 위한 ‘부동산거래사전공시제도’도 시행된다. 과거에는 부동산 거래 계약을 체결한 뒤 잔금을 지급하고 등기를 마치기까지 통상 2개월 간 법적효력의 공백이 생겨 이중매매, 사기 등의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었다. 대법원 관계자는 “현행 가등기 제도가 있지만 비용과 편의성의 문제로 활용이 미미한 실정”이라며 “계약을 체결한 직후부터 등기부등본을 통해 ‘조만간 해당 부동산의 주인이 바뀔 것’이라는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보다 효율적인 방법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집주인과 구매자가 공인중개사 사무소에서 만나서 종이계약서에 서명을 하는 번거로움도 덜게 된다. 부동산전자계약을 활성화해 앞으로는 언제 어디서나 태블릿PC와 휴대전화로 계약을 체결하고, 곧바로 거래신고와 세금납부, 소유권이전까지 마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주민센터 등 여러 기관을 방문해 같은 내용의 서류를 중복 제출할 필요도 사라진다.
대법원은 권리종합정보를 제공하고 부동산 거래 과정을 통합·단축함으로써 연간 1755억 원의 사회·경제적인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전자거래 확대로 의뢰인과 공인중개사의 시간·서류작성비용 등 연간 약 3316억원을 아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전자계약서를 토대로 등기를 신청하면 정보를 잘못 기재하는 실수를 사전에 막을 수 있다.
부동산에 대한 권리는 등기를 해야 법적효력이 발생한다. 하지만 신청할 때 등기상 부동산 표시나 대상등기, 명의인 정보를 정확하게 쓰지 않아 권리를 취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2014년 부동산등기신청에 대한 보정·각하 사건은 88만600
대법원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권리종합정보를 통해 앞으로는 부동산을 거래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도 소유자와 동등한 수준의 정보를 확보함으로써 불공정한 계약을 맺을 위험이 줄어든다”며 “각종 부동산 관련 사고와 분쟁을 예방함으로써 사회적 비용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이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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