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 그 날 낮에는 괜찮은 듯 싶었다. 아이를 돌봐주시는 선생님께 물으니 특별히 콧물을 흘리거나 기침을 하지 않다기에 감기가 그냥 지나가나보다 여겼다. 며칠 전 그렇게 열만 나고 별 이상없이 지나간 적이 있는 터라 그저 퇴근 후 아이아 신나게 놀아줘야겠다고만 생각했다.
외출복을 벗기 전부터 나에게 달려와 안기던 아이가 어째 힘이 없다. 쉬임없이 걸어다니던 아이는 자꾸만 내게 업어달라고 했고, 침이 입 안에 약간 고여 있는 게 보였다. 고인 침은 이내 주변으로 찔끔찔끔 흘러나왔다. 젖병을 입에 갖다대도 도무지 빨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저 손사래를 치며 보챌 뿐이었다. 이 때까지만 해도 난 여전히 ‘감기를 심하게 앓을 모양이네’라고 생각하며 평소 하던대로 열이 나면 해열제를 먹이고 편히 쉬게 했다.
또 다시 새벽 3~4시경. 아이 머리가 불덩이였다. 지금도 이렇게 뜨거운데 열이 더 날 모양인지 손발을 떨기까기 했다. 남편과 난 도대체 뭐 때문에 애가 이렇게 아푼지 이유를 알 수 없어 불안한 마음이 커졌다. 아무리 달래줘도 눈을 뜨지 않고 보채는 아이가 평소 아플 때와는 많이 다르다고 생각하며 다음날 아침 8시 문을 여는 병원을 찾아 갔다.
“수족구병이네요. 입 안 좀 보세요. 다 헐었죠?”
의사 선생님이 보여주는 입 안은 그야말로 내가 눈 뜨고 차마 볼 수 없었다. 울긋불긋한 입 천장과 목 사이로 수포가 잡혀 하얗게 부풀어 오른 모습을 보니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다른 곳에 이런 수포가 잡힌게 없냐는 의사 선생님 질문에 그제서야 엉덩이 주변으로 뭐가 나있다고 말했다. 난 그저 열이 많이 나 열꽃이 핀줄로만 알았는데 수족구병의 증상이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내 모습에 의사선생님은 “병명을 알면 오히려 낫습니다. 치료하면 되니까요”라고 위로해주셨다. 하지만 약봉지를 타며 기 어이 눈물을 보인 나는, 애 입 안이 이 지경이 되도록 엄마라는 사람이 도무지 몰랐다는 사실에 너무 괴로웠다. 열이 펄펄 나던 이틀밤 침조차 못 삼키며 아파했을 아이를 생각하니 더욱 그랬다. 어쭙지않은 지식에 감기로만 여겨 더욱 따뜻하게 물과 우유를 마시게 한 나는, 수족구병에는 반드시 찬물과 찬 음식을 먹여야 아이가 덜 아푸다는 말에 스스로가 너무 원망스러웠다.
수족구병은 바이러스성 질환으로 열 나는 감기와 증상이 비슷하지만 결정적으로 입안, 손, 발, 엉덩이 등에 물집이 잡히는 병이다. 주로 생후 6개월에서 4세 사이의 아이들이 잘 걸리는데, 입안에 잡힌 물집 때문에 잘 먹지 못해 아이들에게 힘든 병이다.
특히 전염성이 강해 수족구병에 걸리면 어린이집 등 바깥 나들이를 자제해야 한다. 물집이 잡힌 후 일주일 후부터는 전염성이 떨어지지만 수주일간은 전염이 가능하다고 한다. 치료는 보통 5~7일간 하게 되는데 이 때 관건은 아이를 잘 먹이는 일이다.
실제 나는 수족구병을 치료하는 동안 아이에게 먹이는 일이 평소보다 3~4배는 힘들었다. 입을 아예 꾹 다물고 음식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물 한모금조차 넘기기 어려워하는 탓에 탈수 증세를 보이지는 않을까 늘 전전긍긍했다.
먹지를 못하니 배가 고파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제일 아펐을 때 3일간은 밤중에 30분마다 깨서 우는데 정말로 힘들었다. 눈을 뜨지 않고 우는 아이에게 도대체 어떤 것을 먹여야할지, 젖병을 차디 차게 해 먹여도 소용이 없었다. 얼마나 아프면 그럴까. 그런 모습을 보는 내내 마음이 아펐지만 이같은 감정도 아픈 아이 앞에서는 다 사치. 정신을 차렸다.
수족구병은 일명 ‘아이스크림병’이라고도 한다. 입안에 잡힌 물집 때문에 못 먹는 아이에게 통증을 덜 느끼게 하도록 도우려면 아이스크림처럼 찬 것을 먹어야한다는 의미에서다. 실제 좀 큰 아이들이 수족구병에 걸리면 아이스크림을 자주 먹인다. 하지만 우리 아이는 아직 15개월밖에 안돼 안타까웠다. 대신 생각해 낸 게 수박이었다. 일단 수분이 보충되고, 단 맛이 나며 냉장고에 아주 시원하게 뒀다가 먹이면 딱이겠다 싶었다.
난생 처음 빨간 수박을 맛 본 아이의 표정은 너무 행복했다. 배가 많이 고팠을텐데, 이제서야 엄마가 자기 마음을 알아준다는 눈빛을 보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배를 좀 더 채워주기 위해 부드러운 카스테라를 몇 조각씩 떼어서 줬다. 달콤한 맛이 걱정됐지만 일단 아이의 주린 배를 채워주는 일이 더 급했다. 그나마 카스테라를 따박따박 받아먹는 아이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젖병을 빨기 힘들어하는 아이에게 우유는 컵에 담아 빨대로 먹였다. 약물 치료와 함게 기운을 조금씩 회복한 아이는 빨대 빠는 힘이 덩달아 좋아졌다.
그렇게 일주일을 꼼박 앓은 아이는 다행히 수포 잡힌 곳이 사그라들었고, 상처는 거의 아물어갔다. 수족구병을 앓은 덕분(?)에 빨대의 세계를 경험한 아이는 이제 곧 잘 빨대를 사용한다. 덤으로 수박과 카스테라를 즐겨찾는 입맛을 얻었다. 하지만 아이가 아프지 않고 다시 내 옆에서 소리내 웃어주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일상으로의 복귀가 너무 감사하다.
엄마는 항상 배워야한다. 아이의 건강을 두고선 특히 그런 것 같다. 막연하게 불안해 할 필요도 없지만 반대로 자만심에 중요한 증세를 간과하거나, 내
[디지털뉴스국 방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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