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송금한 돈, 은행반환 거부 정당하단 판결…부당이득금 소송이었다면?
↑ 은행반환 거부 정당/사진=연합뉴스 |
실수로 타인 명의의 통장에 송금했는데, 이 통장 잔고가 마이너스 상태라면 은행은 이 돈을 반환하지 않아도 된다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아무리 마이너스 통장이라도 실수로 잘못 송금했는데 은행이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는 게 은행의 갑질에 가까워 보입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소송 내용을 보면 당연한 판결일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무엇보다 이 재판이 '추심금 청구 소송'이라는 게 그 이유입니다.
추심금은 채무자에게 받을 돈을 제3 채무자에게 받는 것을 말합니다. 다만 채무자는 제3 채무자에게 받을 돈이 있어야 합니다.
이 때문에 이 소송은 채무자가 제3 채무자에게 받을 돈이 있는지만 살피는 데, 이 사건에서 채무자는 제3 채무자에게 오히려 빚만 지고 있었습니다.
좀 더 들여다보면, 이 사건은 채권자 즉, 타인(B씨)의 은행 계좌에 잘못 송금한 A씨의 권리가 아닌 제3 채무자(은행)에 대한 채무자(B씨)의 권리를 다투는 소송입니다.
A씨는 B씨가 C은행에 개설한 마이너스 통장에 실수로 2천500만원을 송금했습니다. B씨의 통장에 돌려줄 돈이 있었다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당시 B씨의 통장 잔액은 -9천600여만원이었습니다.
의정부지법 민사합의4부(조윤신 부장판사)는 이번 소송에서 A씨와 B씨 간 채무관계에 상관없이 B씨가 C은행에 받을 돈이 있는지를 살폈습니다.
마이너스 통장은 일종의 대출로, 계좌 잔액이 있을 때는 일반 예금 통장이지만 잔액이 마이너스 상태로 넘어가면 대출로 전환됩니다. B씨는 C 은행에서 받을 돈이 아니라 오히려 갚아야할 돈만 있었던 셈입니다.
이 때문에 재판 과정에서 C은행 측은 B씨가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 당시 대출 약정을 제시했습니다. 이 약정은 '통장이 대출로 전환됐을 때 입금된 돈은 '자동적으로' 대출금 변제에 충당한다'는 취지의 조항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런 약정 등을 근거로 재판부는 은행 측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이 판결은 A씨가 상소를 포기해 지난 14일 확정됐습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24일 이번 판결과 관련, "(B씨가) 다른 예금통장 돈을 쓰든지 예금이 없으면 차를 팔든지 해서라도 (A씨에게) 갚을 의무가 있다는 판결로 보인다"면서 "채권채무 관계가 삼자를 거쳐 간 건데, 이 건에 대해선 (삼자인) 은행에 원상회복 의무가 없다고 본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서는 A씨의 권리를 직접 다루는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로 소송을 구성하고 진행했다면 결과가 다르게 나왔을 수도 있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습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A씨 입장에서만 보면 은행 측이 반환하지 않은 돈은 부당이득금으로 볼 여지가 있다"며 "추심금 청구 소송으로 진행돼 A씨의 권리가 배제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그럼에도 약정 조항에 대한 재판부의 해석에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자동적으로'이라는 문구를 적극적으로 해석해 '통상적인 입금'으로 제한했다면 결과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
다수의 은행이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할 때 이 같은 약정을 적용하고 있으나 개설자들은 대부분 이 조항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은행의 약정 조항을 개선해야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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