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부산 해운대에서 광란의 질주로 17명의 사상자를 낸 사고 가해차량 운전자가 정신질환을 앓은 것으로 확인되면서 정신질환자의 운전면허 취득 규정이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1일 해운대경찰서에 따르면 사고 가해차량 운전자인 김모 씨(53)는 사고 당시 순간이 전혀 기억나지 않고 정신을 차려보니 병원이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혈액을 채취해 검사한 결과 음주나 마약 복용 흔적도 없는 것으로 알려져 운전자가 사고 직전 정신을 잃은 것 아니냐는 추정이 가능하다. 경찰은 김씨가 평소 앓고 있는 뇌질환 때문에 사고를 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 사고를 계기로 대형 교통사고를 유발할 수 있는 뇌질환자나 정신질환자의 운전면허 취득에 사실상 무방비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씨는 과거에도 보행로로 차량을 운전하는 등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사고를 내 뇌전증이 의심된다고 경찰은 밝혔다.
뇌전증은 경련을 일으키고 의식 장애를 일으키는 발작 증상으로 운전면허시험 응시결격사유다. 1993년 운전면허를 취득한 김씨는 그동안 2번의 적성검사를 받고 면허를 갱신했지만 뇌질환에 대한 검증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현행 운전면허시험은 정신질환자나 뇌전증 환자는 응시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면허시험 응시자가 병력을 밝히지 않으면 면허취득을 제한할 방법이 전혀 없다.
면허취득 전 시행하는 신체검사도 시력과 청력, 팔·다리 운동 능력 등 간단한 테스트만으로 통과할 수 있다. 10년마다 면허를 갱신하기 위한 운전적성검사도 허술하기는 마찬가지다. 면허취득 때처럼 간단한 신체검사만 하면 무사통과다.
보건복지부나 지자체, 병무청 등의 기관은 정신질환자, 알코올·마약 중독자 등 운전면허 결격사유 해당자 정보를 도로교통공단에 보내 운전면허 유지 여부를 가리는 수시적성검사를 하지만 이 역시도 형식적이다.
특히 정신질환자는 입원 기간이 6개월 이상이어야 도로교통공단에 통보되고 뇌전증 환자는 아예 통보대상에서 빠져 있다.
이 때문에 운전면허 취득과 갱신 심사를 더욱 철저하게 하도록 법 개정 등 제도를 보완해 대형교통사고를 유발할 수 있는 정신질환자나 뇌전증 환자의 운전을 막아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
도로교통공단 부산지부 관계자는 “정신·뇌질환 운전자는 도로를 달리는 시한폭탄”이라며 “독일처럼 개인 병력을 면허발급기관과 병원이 공유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결격사유에 해당하면 면허를 일단 보류하고 정밀감정해 부적격자를 가려내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 = 박동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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