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 국가대표를 꿈꿨던 한 고등학생이 대회에 참가해 경기를 마친 뒤 뇌출혈로 쓰러져 한 달 동안 사경을 헤매다 결국 숨을 거뒀습니다.
복싱인들은 한국 복싱이 극도의 침체기에 빠진 상황에서 상상하기도 싫은 비극까지 터지자 참담한 심정을 금치 못했습니다.
경기 수원의 한 고교에 다니는 A(16) 군이 9일 오전 5시 57분께 생을 마감했습니다. 병원에 입원한 지 한 달여만입니다.
A 군은 지난달 7일 충남 청양 군민체육관에서 열린 '제48회 전국복싱우승권대회' 고등부 64㎏급 8강전에서 판정패를 당했습니다.
경기를 마친 A 군은 관중석으로 향했고, 얼마 안 돼 의식을 잃고 쓰러졌습니다.
현장에 있던 의료진들이 A 군의 상태를 확인했을 때는 동공이 풀려 뇌출혈이 의심되는 상황이었습니다.
A 군은 닥터 헬기를 타고 천안의 한 대학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병원에서 외상성 뇌출혈 진단을 받은 A 군은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았으나 끝내 의식을 되찾지 못했습니다.
A 군은 넉넉하지 않은 집안 형편 속에서 자신의 주먹 하나에 인생을 걸고 꿈을 키워오던 복싱 꿈나무였습니다.
부모의 반대에도 "기필코 국가대표가 돼서 부모님을 호강시켜 드리겠다"고 했던 의젓한 학생으로 알려져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습니다.
병원비를 돕고자 1~2차에 걸친 후원 모금 운동에 이어 현재 3차 모금 운동을 진행 중이었던 대한복싱협회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협회 관계자는 "현재까지 2천만원 정도를 모금했다"며 "기적이 일어나길 바랐는데,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며칠 전 그 학생의 아버지에게 전화가 와서 '오줌이 나오기 시작했다. 혈색도 좋아졌다'는 얘기를 듣고 한가닥 희망을 걸었는데, 안타깝다"고 덧붙였습니다.
잠재적인 복싱 국가대표를 잃은 박시헌 현 국가대표팀 감독도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냈습니다.
박 감독은 "얼마 전 국가대표팀 선수들과 함께 쾌유를 바라는 글을 다 써서 전달했다"며 "국가대표가 꿈이라고 해서 태극마크가 달린 유니폼과 체육복까지 전해주면서 일어나길 고대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복싱인들은 한국 복싱이 대중들의 외면을 받는 상황에서 자칫 이 사고가 더 멀어지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우려했습니다.
한국 복싱은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상당한 인기를 누렸습니다.
세계 챔피언은 최고의 스포츠 스타로 대접을 받았습니다. 아마추어 선수들이 출전하는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에서도 좋은 성적을 낸 선수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한국 복싱은 전반적인 생활 수준 개선 속에 '배고픈 스포츠', '위험한 운동'이라는 인식이 강해지면서 쇠퇴의 길을 걸었습니다.
44명까지 배출했던 세계 챔피언은 2007년 7월 챔피언 벨트를 반납한 지인진을 끝으로 명맥까지 끊겼습니다.
아마추어는 아예 선수가 자체가 없고 올해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도 한국 복싱은 역대 최저 인원인 1명만이 출전하는 수준으로까지 전락했습니다.
힘들고 배고픈 복서 생활을 기피하는 풍조 속에서도 꿈을 키워간 선수에게 이러한 악재가 발생해
A군을 병문안했던 한국 복싱의 대들보 신종훈(27·인천시청)은 "A군의 아버님이 다른 학생들이 아들의 사고로 인해 복싱을 안한다고 할까 봐 그걸 더 걱정하시더라"며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MBN 뉴스센터 / mbnreporter01@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