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디와퍼포먼스…광장엔 축제가 열렸다

↑ 한국청년연대, 전국 대학생 시국회의 등 청년·대학생들이 12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촉구 집회에서 오방색 풍자를 하고 있다.

이날 민중총궐기대회에는 톡톡 튀는 아이디어의 풍자적 퍼포먼스들이 대거 등장했다. ’박근혜 대통령 하야‘라는 메시지는 무거웠으나, 그 전달 방법은 그 어느 시위 때보다 유쾌했다. 독기어린 표정으로 과격한 구호를 외치는 일부 시민들도 있었으나 대다수 집회 참가자들은 생기발랄한 표정으로 축제를 즐기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번 집회에는 특히 풍자적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시위도구와 퍼포먼스들이 집회에 참여한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소속 농민 수십명은 삼베 옷을 입고 청와대라는 글귀가 적힌 대형 관을 지고 행진하는 상여 퍼포먼스를 벌였다. 이들은 “청와대로 가겠다”며 내자동 로터리 경찰이 저지선 바로 앞까지 행진해 경찰에 길을 터줄 것을 요구하면서 한때 긴장감이 고조되기도 했으나 별다른 충돌 없이 몇 시간 뒤 물러났다.
오후 본집회 시작 직전에는 참석자들의 긴장을 풀어준다는 취지에서 집회 주최측이 스트레칭 강연을 열며 이번 최순실 사태를 풍자했다. 스트레칭 시범자는 문화체육관광부가 3억5000만원의 예산을 들여 보급한 차은택씨의 ‘늘품체조’ 대신 3500원짜리 ‘하품체조’를 가르쳐주겠다며 스트레칭 시범을 보였다. 손을 배에 모으고 허리와 고개를 앞으로 깊이 숙이는 동작을 할 때는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검사들이 공손히 인사하는 모습을 본떴다”고 설명하고, 팔을 펴면서는 “하야!”라고 외쳤다.
서울 시청광장과 광화문광장 곳곳에서는 박 대통령을 풍자한 ‘닭 퍼포먼스’ 곳곳에서가 벌어졌다. 무당 옷을 입은 집회 참가자가 닭을 쫓는 퍼포먼스를 벌이며 ‘최순실 게이트’를 패러디하기도 했다. ‘청년총궐기’가 열린 대학로에서는 닭 가면을 쓴 참가자가 오방색 끈을 몸에 묶는 퍼포먼스가 시민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또 사람 크키 5~6배 만한 위안부 소녀상을 실은 트럭이 집회 참가자들과 행진을 같이 하기도 했다. 지난 2차 촛불집회에 등장했던 대형 단두대도 또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행진 인파 속에서는 대중가요를 재치있게 개사한 여러 버젼의 ‘하야가’가 울려퍼졌다. 특히 가수 10cm의 노래 ’아메리카노‘를 개사해 “박근혜 하야 좋아 좋아 좋아”라는 노랫말은 시민들의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러한 현상을 시민의식의 성숙에 기인한다고 분석했다. 구 교수는 “100만이라는 숫자는 역사적으로 볼 때 혁명이 일어나는 규모”라며 “그 와중에서도 아무런 폭력 행사 없이 축제적인 분위기 속에 평화집회가 진행된 것은 세계사 어디에도 없었던 일”이라고 평가했다. 구 교수는 “대다수 국민들이 공감하고, 그들의 지지를 이끌어내려는 매우 성숙한 집단적인 노력”이라며 “이는 사람들의 심적 여유가 과거 80년대와는 달리 커졌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연규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