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질에 피가 사방으로 튀고 물건도 다 깨졌어요. 너무 무서웠어요."
올해 4월 전라남도 한 섬마을에서 근무 중인 공중보건의 김 모씨(25)는 야간에 들이닥친 취객들 다툼에 아찔한 상황을 맞았다. 근처 장례식장에서 맥주병으로 서로를 치받는 폭행 사고가 났고 이 과정에서 다친 A씨를 치료하는 도중 끝까지 시비를 가리자고 언쟁을 벌이던 이들은 보건지소에서 또다시 주먹을 휘둘렀다.
경찰에 신고할 수 있는 긴급 버튼이 있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버튼을 누르자 황당하게도 서울 소재 한 보안업체에서 전화가 왔다. 다급한 김씨 목소리에 업체는 "버튼을 잘못 누른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지역 파출소 위치는 보건지소에서 단 5분 거리였지만 긴급한 상황에서 전화가 서울 보안 업체로 걸린 것. 경찰은 간호사의 신고를 받고 5분 뒤에 현장에 도착했지만 폭행 사태가 끝난 뒤라 저항도 못한 채 계속 폭행당한 피해자는 이미 빈사 상태였다.
더 황당한 것은 사건 이후의 지역 경찰들의 반응이었다. 김 씨는 “일주일 뒤 처벌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물었더니 우물쭈물하며 대답을 못했다”며 “다른 지역의 공보의들과 함께 ‘마을 사람이라 그런 거라면 우리가 나서겠다‘고 엄포를 놓은 뒤에야 본청 형사가 찾아와 해당 주민이 형사입건 됐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경찰관계자는 "사건 당사자 3명을 모두 해경선을 태워 인근 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하고, 바로 본청에 폭력사건에 대한 발생보고를 띄워 조치했다"며 "피해자들이 병원 치료를 받고 조사 일정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5일만에 불구속 기소하게 됐다"고 말했다.
22일 매일경제가 대한공중보건의사협회와 함께 전국에 파견돼 있는 2000여명의 공중보건의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도서지역 공중보건의들 상당수가 이 같은 위협에 무방비 상태인 것으로 드러났다. 설문에 응답한 580명의 공중보건의 중 213명(36.8%)은 관사가 위험하다고 대답했고, 이들 중 81명(14.1%)은 ’실제로 안전상 위협을 느낀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설문조사 결과 도서지역 공중보건의들은 “밤에 신원을 알 수 없는 정신질환자, 취객들이 문을 두드리는가하면 관사에 도둑이 들어도 속수무책”이라며 “외진 곳에 불량청소년들이 무리지어 음주와 흡연, 고성방가를 일삼기도 한다”고 하소연 했다. 한 응답자는 “살인 혐의로 지명수배를 받은 사람이 보건지소를 한참 기웃거리다가 사라지기도 했다”고 경험담을 털어놨다.
2016년 10월 현재 공중보건의는 약 2000명으로 보건소, 보건지소, 교정시설, 공공병원 등에 배치돼 복무하고 있다. 주로 의료취약지역에 배치돼 일하지만 근무지 특성상 숙소를 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대부분이 관사에 거주하는 형편이다.
대한공중보건의사협회가 섬마을 보건소 실태 파악에 나선 것은 지난 5월 전남 신안군 섬마을의 마을 주민들이 한 여교사를 집단 성폭행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도서 벽지에서 공무를 수행하는 국가인력의 근무 환경에 대한 우려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섬마을 보건소, 보건지소 등은 의료취약지역 특성상 격오지와 외지가 많아 관사의 치안과 안전에 크게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상황은 섬마을 여교사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도서지역 공중보건의들도 ‘각자도생’을 모색해야 하는 처지다.
대부분 외진 곳에 위치해 있는 관사들이 최소한의 방범시설조차 갖추고 있지 못한 탓이다. 설문에 응답한 공중보건의 중 절반가까이(41%)는 안전의 최소 마지노선인 관사 주변 가로등 시설조차 ’제대로 돼 있지 않다‘고 대답했다. 도서지역에서 공중보건의로 일하는 A씨는 “제대로 된 대문도 없어 나무로 된 방문이 대문 구실을 하고 있을 정도”라며 “야간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전기충격기를 자비로 구입했다”고 하소연했다.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 김재림 회장은 “공중보건의는 주로 인구밀도가 낮고 인적이 뜸한 지역
[유준호 기자 / 임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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