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출산하고 나서 내 인생은 많은 게 바뀌었다. 내 아이의 소중함을 알게 되니 이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생명이 없다. 그래서 세월호 유가족들 얘기만 나오면 여전히 가슴 한 구석이 아려온다. 심지어 촛불 민심을 타오르게 한 장본인 정유라가 아이를 볼 수 있도록 불구속 수사 한다면, 언제든 입국하겠다고 '딜' 하는 모습조차 '두살배기 엄마니 그럴만도 해'란 생각이 한편 들 정도다.
아이가 주는 기쁨이 큰 걸 알기에 자신있게 '딩크족'인 친구들에게 "힘들어도 애는 꼭 낳아야 해"라고 설득했다. 연애만 하는 후배들을 만날때면 "결혼을 얼릉 해야지, 애는 꼭 낳아봐야 해"라고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출산 전도사'가 됐다.
그러던 내게, 내가 이러려고 출산했나, 이러려고 주변 가임기 여성들을 설득한게 아닌데 자괴감만 들고 괴롭기 그지 없는 일이 발생했다. 행정자치부가 자신있게(?) 내놓은 출산지도 때문이었다. 내 눈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눈을 의심케 한 가임기 여성수 분포도가 제일 큰 문제였다.
분포도에는 243개 지자체별 20~44세 여성의 인구수가 1의 자릿수까지 표시돼 있다. 해당 나이의 여성 인구수에 따라 분홍색의 선명한 정도가 차등적으로 처리돼 어느 지역에 가임기 여성의 수가 많은 지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게 했다. 17개 시도별 가임기 여성수를 순위로 매겨 놓기까지 했다.
행자부의 취지는 그랬다. 지자체별로 출산통계와 출산지원 서비스를 제공해 저출산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겠다는 것. 또 지자체간 지원 혜택 비교를 통해 자율경쟁을 적극 유도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취지를 들으니 더 황당할 따름이었다. 누가 출산 지원 서비스를 몰라 애를 안 낳는거야? 우리 지역에 가임기 여성수가 많은 거랑 저출산 문제 극복이 무슨 상관이야? 가임기 여성 수가 많으니 어떡하라고? 정체불명의 이 지도를 정책에는 도대체 어떻게 반영하겠다는건데? 아니, 저출산 문제가 여성만의 문제야? 나는 결국 정부가 보기에 가임기 여성 중 한 명으로서만이 아이를 낳은거야?…. 도무지 답이 안나왔다.
시민들의 반응은 더욱 냉소적이었다. '여성들을 애 낳는 기계로 보는거냐?' '우리는 가축이 아니다', '나라에 성희롱을 당한 기분이다' '이런 나라를 위해 내 자궁을 쓸 생각은 추호도 없다' 등등.
행자부가 저출산 문제 대책의 핵심으로 꼽은 '가임기 여성'들에 대한 마음은 정작 전혀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가임기 여성들, 2030 여성들이 결혼을 왜 못하는지, 결혼이 왜 그들에게 사치인지, 결혼을 해도 애 낳는 것이 왜 두려운지, 워킹맘들이 왜 둘째 낳을 생각을 못하는지, 워킹맘들이 회사를 그만둘까 말까 하루에도 왜 몇번씩 고민을 하는지, 애 맡길 곳이 없어 속이 새까맣게 타는 엄마들이 얼마나 많은지. 행자부는 이런 고민에 진심으로 답을 하는 지도를 만들었어야했다.
우리나라에선 가임기 여성이 '엄마'가 되는 일도 어렵지만 유지하는 일은 더더욱 어렵다. 물리적인 것 뿐 아니라 엄마가 되는 일에 대한 심리적 장벽까지 헤아려줄 순 없을까. 그리고 엄연히 엄마 옆에는 아빠가 존재한다. 엄마, 아빠 없이 태어난 아이가 어디 있겠는가.
출산 지도를 공개한 지 하루만에 서비스를 중단한 행자부는 내용을 수정중이라는 공지문만 올려놓
[디지털뉴스국 방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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