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와~"조금만 더 조금만 더..."
11일 오후 8시.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한 인형 뽑기방. 세 발 달린 집게가 파이리 인형을 얼굴 부분만 감싼 채 들어 올리자 주변에서 기대에 찬 소란이 일었다. 그러나 집게에 잡힌 인형은 목표지점을 눈 앞에 두고 힘없이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뽑기 게임을 하던 직장인 유 모씨(27)도 아쉬움에 고개를 떨궜다.
'인형뽑기방(속칭 뽑기방)'은 집게로 인형을 잡아 올리는 게임기를 갖춘 오락실이다. 최근 유동인구가 많은 시내 중심가와 대학가 주변을 중심으로 우후죽순 늘어나는 추세다. 매일경제가 서울 신촌과 홍대, 종로 일대 인형 뽑기방을 둘러본 결과 밤늦은 시간까지도 젊은 커플들과 직장인, 학생들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뽑힐 듯 뽑히지 않는 안타까움이 중독성으로 이어지면서 학생들과 직장인들의 발길을 사로잡고 있다.
그러나 업자들 사이에서 '인형뽑기는 실력과 무관한 확률 게임'이라는 게 공공연한 사실이다. 인형 뽑기 기계(크레인)에 달린 집게발의 힘을 약하게 하거나, 집게가 인형을 들어올리는 순간 집게를 흔들어 떨어뜨리는 등 방식으로 '확률 조정'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뽑기 실력 보다는 돈을 많이 써야 인형을 뽑을 수 있는 구조인 것이다.
게임물관리위원회에서는 크레인 제품에 확률조정기능이 들어가 있으면 유통을 허가하지 않고 있지만, 매일경제 취재 결과, 집게발 힘조절 등을 통해 '확률 조작'이 가능한 인형뽑기 기계(크레인)가 여전히 시중에서 유통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업체 측에서 확률 기능 없이 심사를 받은 이후 유통 과정에서 개조해 판매하고 있을 가능성이 의심된다.
서울 시내 인형뽑기방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크레인'을 제조하는 전자제품 업체 A사가 온라인에 올려 놓은 제품설명을 보면, "확률 조정기능 탑재. 초보 운영자도 쉽게 확률 조정이 가능하다"는 문구가 써 있다. 해당 업체는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다들 그렇게 (확률조정해서) 하는데 문제 있겠나"라며 "그거 안하면 영업 못한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크레인 제조 업체 B사도 마찬가지였다. 이 회사는 10년 이상 크레인 기계를 제조한 업력을 홍보하면서 "매출 대비 뽑히는 인형 갯수를 정확히 조절할 수 있다"며 확률조절 기능을 설명했다.
확률 조정은 곧 소비자 피해로 이어진다. 실제로 이날 종로의 한 인형 뽑기방에서 뽑기에 성공한 고객은 거의 없었다. 120㎡ 남짓의 작은 공간에 1시간 동안 30~40명의 '인형 사냥꾼'들의 발길이 이어졌지만 인형을 뽑아 집으로 돌아간 '인형 강태공'은 단 1명에 불과했다.
고가 경품 인형으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영업행위도 여전했다.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제28조)'에 따르면 청소년게임 제공업자들이 제공하는 인형뽑기 경품은 완구류와 문구류 등으로 제한되며, 가격은 소비자판매가 기준으로 5000원 미만이어야 한다.
그러나 신촌과 홍대, 잠실 등에서 운영 중인 뽑기방 기계 안에는 한 눈에 봐도 고가 캐릭터 인형들로 가득했다. 신촌의 한 뽑기방 기계 안에 들어있는 '피카추'와 '파이리', '꼬북이' 등 포켓몬 캐릭터 인형의 소비자가격을 온라인을 통해 확인한 결과 정품 인형의 가격은 최소 1만원을 호가했다. 뽑기 기계 안에 든 제품이 정품이라면 명백히 법률 위반이다.
규정대로라면 밤 10시 이후에는 청소년의 출입도 금지되지만, 무인으로 영업하는 업장이 많아 "밤에도 교복을 입은 청소년들이 많은 것 같다"고 주변 상인들이 전했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전국 지방자치단체와 경찰이 인형뽑기방의 불법 영업행위에 대해서 일제 단속을 벌이기도 했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게임물관리위원회가 크레인 게임물 업소에 대한 실태조사 결과, 전국 144곳 중 70.1%인 101곳이 법률을 위반한 것으로 조사됐다. 뽑기 기계를 확률 조작이 가능하도록 개
경찰은 뽑기방에서 인형뽑기는 실력이 아닌 운으로 결정된다는 점에서 도박과 유사한 '사행성' 게임으로 볼 소지가 있다고 보고 "대응 방안을 강구 중"이라고 밝혔다.
[유준호 기자 / 임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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