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집단소송 제도가 국내에 도입된지 12년만에 처음으로 투자자 승소 판결이 나왔다.
20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7부(부장판사 김경)는 김 모씨 등 6명이 도이치방크를 상대로 "주가연계증권(ELS) 시세조종으로 입은 손해를 배상하라"며 낸 증권집단소송에서 "투자자에게 85억 8000만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승소판결했다.
법원이 배상하라고 명령한 피해액은 85억원이나 만기일 이후 연 5~15% 부과되는 이자를 합치면 배상액은 총 1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이번 사건에서 소송을 낸 원고는 6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되면 그 효력은 무려 464명에게 미치게 된다. ELS를 만기까지 보유한 투자자 494명 가운데 집단소송과 별개의 단체소송에서 이미 승소했거나, 명시적으로 불참 의사를 밝힌 30명을 제외하면 모두 피해보상을 받게된다. ▶관련기사 A면
지난 20005년 도입된 증권집단소송에서 1심선고 결과가 12년만에 처음 나온 것은 소송 요건이 그만큼 까다롭기 때문이다. 소송 개시에 앞서 "집단소송을 해도 된다"는 법원의 허가부터 먼저 받아야 된다. 허가가 나더라도 회사가 불복하면 다시 다툴 수 있다는 '즉시 항고제도'가 있어 허가만 사실상 3심제로 운영된다. 채이배 국민의당 의원에 따르면 국내에서 집단소송 허가까지만도 평균 48개월이 걸리는 것으로 분석됐다.
국내 제도 도입후 12년간 법원에 접수된 증권집단 소송은 총 9건이었으나, 실제 허가 결정이 난 사건은 5건에 불과하다.
이 중 하나가 이번 도이치방크 ELS 시세조종 사건이었다. 문제가 된 ELS는 한국투자증권이 지난 2007년 8월 삼성전자와 KB금융 보통주를 기초자산으로 발행한 상품이다. 그런데 2년 뒤 만기일인 2009년 8월 26일 헤지운용을 맡았던 도이치방크가 KB금융을 장 마감직전 대량매도하면서 주가가 수익상환 가격 밑으로 떨어졌고, 투자자들은 연 14%대 고수익 기회를 잃고 오히려 25% 가까운 손실을 떠안았다.
이에 반발해 원고 김모씨와 대리인단은 2012년 3월 소송을 낸 이후 4년간 각고의 노력 끝에 지난해 5월 겨우 증권집단소송을 허가 받고, 이날 소송 시작 5년만에 승소했다. 이번 판결은 대법원 허가를 받고 이미 재판중인 3건의 집단소송뿐만 아니
■ <용어 설명>
▷ 집단소송 : 같은사건에서 한 사람만 승소해도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다른 피해자 전원을 한꺼번에 구제하는 제도. 우리나라에서는 소액 투자자 보호를 위해 2005년 1월 증권분야에만 제한적으로 집단소송을 허용했다.
[김윤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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