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주도한 범죄 행위라고 주장했다.
유 전 장관은 23일 오후 서울 대치동 박영수 특별검사팀 사무실에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해 취재진에 "블랙리스트는 분명히 있었고, 이를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청와대에 들어온 뒤 주도했다"고 말했다.
또 "블랙리스트는 정권·체제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좌익'이라는 누명을 씌워 차별·배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면서 "분명한 범죄행위"라고 비판했다. 국가 예산과 제도를 이용해 비판 세력을 조직적으로 핍박한 이러한 행위가 우리 사회의 민주질서과 가치를 훼손해 헌법 가치에 어긋나는 것이라고도 지적했다.
그는 "김 전 실장이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도, 저한테도 블랙리스트 관련 지시를 했다"며 "김 전 실장이 굉장히 큰 책을 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유 전 장관은 블랙리스트 실행을 위해 정부 사정기관이 대거 동원됐다는 사실도 밝혔다. 경찰과 검찰, 국세청, 관세청, 감사원까지 정부 비판 세력을 핍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였다는 것이다.
그는 "제도 자체를 개선하지 않으면 다음 정부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블랙리스트 존재를 폭로한 이유에 대해선 "제 경험으로는 유신 이후 전두환 시대까지 블랙리스트 명단 관리가 있었다. 이후 민주화되며 없어졌는데 다시 부활했다. 대한민국 역사를 30년 전으로 돌려놨다"며 "관련자를 처벌하고 바로 잡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박근혜 정부 초대 문체부 장관을 지낸 유 전 장관은 정권에 비판적인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지원에서 배제할 의도로 작성된 블랙리스트가 실제 존재하고 이를 본 적 있다고 폭로한 바 있다.
지난 2014년 7월 자리에서 물러난 유 전 장관은 지난달 말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퇴임 한 달 전 블랙리스트를 봤다"고 주장했다. 같은해 1월과 7월 두 차례 블랙리스트 문제로 박 대통령과 면담도 했다고 말했다. 당시 그는 박 대통령에게 "이러면 안 된다고"고 했으나 박 대통령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지난해 10월 또 다른 인터뷰에선 김 전 실장이 블랙리스트 작성·관리에 반대하거나 소극적인 문체부 1급 실·국장 6명으로부터 사표를 받으라고 지시했다고 폭로했다.
블랙리스트에는 세월호 참사의 정부 책임을 지적하거나 과거 야당 정치인 지지 선언을 한 약 1만명의 문화·예술인 이름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실에서 작성하고 교육문화수석실을 거쳐 문체부로 전달됐다는 게 특검의
특검은 이날 유 전 장관을 상대로 박 대통령이 블랙리스트 작성·관리를 지시하거나 최소한 묵인·방조한 게 아닌지 조사하고 있다.
박 대통령 측은 최근 공식 입장자료를 내 "블랙리스트 작성을 어느 누구에게 지시한 사실이 없다"며 의혹을 부인했다.
[디지털뉴스국 박소현 인턴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