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의 '금싸라기 땅'으로 통하는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 이곳에 위치한 주요 상업용 빌딩 가운데 10곳 중 4곳은 대물림된 것으로 집계됐다. 심지어 만 19세 청년이 수억원대 빌딩 지분을 증여받아 사회초년생 월급을 뛰어넘는 매달 500만원대 임대수익을 올리고 있는 사례도 확인됐다.
매일경제 기획취재팀이 가로수길 양측 블록에 위치한 134개 건물에 대한 등기부 등본(지난해 12월30일 기준)을 전수조사한 결과, 중소형 빌딩으로 부를 세습하는 대한민국 금수저들의 자산 증식 패턴이 한눈에 들어왔다. 법인을 제외한 개인소유 상업용 건물 134개 소유자 가운데 상속 또는 증여로 소유권을 취득한 곳이 35%인 47곳에 달했다.
일반인들이 꿈도 꾸기 힘든 수백억대 빌딩을 두 곳 이상 소유한 소위 '빌딩거부'도 5명이나 확인됐다. 빌딩 금수저들 대부분은 강남에 수십년간 머물며 오랫동안 부를 쌓아온 땅부자·집부자들으로 나타났다. 가로수길의 이런 세태는 근로소득을 통한 신분상승보다 부동산 대물림을 선호하는 사회의 민낯이기도 하다. 이런 현상은 점점 심해지고 있다.
동국대 김낙년 교수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자산 상위 10% 계층에 전체 부의 66.4%가 쏠려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 재산에서 부모한테 물려받은 상속·증여의 비중도 1980년대엔 27%였으나 2000년대엔 42%로 치솟았다. 대부분 부동산 자산이다.
물론 부동산 소유와 상속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에 대한 맹목적인 반감은 자본주의 근간인 '사유재산 보호'와 '경제 자유'를 침해할 소지마저 있다.
다만 지나친 부동산 쏠림 현상은 건전한 경제발전에 심각한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우선 열심히 일해 버는 근로소득으론 신분상승을 기대할 수 없는 패배의식을 사회에 만연시킬 수 있다.
김문조 고려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근로소득은 당대에서 끝나지만 부동산 등 자산 소득은 대를 이어간다"며 "한국 사회는 자기가 어렵게 사는 것에 감내 하지만 자기 자식의 남의 자식보다 못사는 것에 대한 박탈감이 더 크기 때문에 '수저론' 중심에 부동산이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부동산 임대업과 상속이 기업가 정신이나 일자리 창출과 무관하다는 점도 문제다. 결국 바람직한 해결방안은 부동산 이외의 투자로도 효과적인 부의 창출 및 상속이 가능하다는 믿음을 심어놓는 일이다. 예컨대, 부동산 부자보다 벤처기업가가 예우를 받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밖에 부동산을 소유한 경우에는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유리지갑인 직장인들의 근로소득에 반해 금수저들이 갖고 있는 빌딩·금융 등 자산소득에 대한 과세가 여러가지 편법을 통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기획취재팀]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