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설지공'(螢雪之功 ). 가난한 사람이 반딧불과 눈빛으로 글을 읽어가며 고생 속에서 공부함을 일컫는 말이다. 하지만 젊은 층에선 우스갯 말로 '형편 따위를 말하지 말고 공부하란 말이야! 공부!' 를 그냥 네 글자로 줄인 말로 통한다. 문제는 흙수저들의 마지막 희망사다리격인 교육이 노력에 비례하지 않는 모래사다리로 허물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한국인구학회가 통계청에서 자료를 이용해 초·중·고 재학생 6408명의 하루평균 학습시간을 분석한 결과, 같은 초등학생이어도 부모의 교육정도, 가구소득 수준에 학습시간이 평균 60~150분 차이가 났다. 특히 이런 학습시간 차이는 초등에서 고등으로 갈수록 차이가 더욱 벌어졌다.
아버지 교육수준이 중학 이하인 초등학생 자녀의 총 학습시간은 하루 275분, 대학 이상 학력을 지난 아버지를 둔 중학생 자녀의 학습시간은 347분으로 70분 가량 차이가 났다. 고등학생 자녀의 경우 아버지 교육 수준이 중학이하일 경우 380분, 대학이상일 경우 538분으로 158분이나 차이가 났다.
학습시간을 좌우하는 건 부모의 교육수준 뿐만 아니다. 가구소득이 200만원 미만 일때 초등생자녀의 학습시간은 279분, 600만원 이상일 때에는 345분으로 66분 차이가 났다. 고등학생 자녀의 경우 가구소득이 200만원 미만일 때 399분인 반면 600만원 이상일 경우는 520분으로 121분이나 갭이 발생했다.
잘배우고 부유한 부모 밑에서 똑똑한 자식이 난다는 얘기일까. 결론은 '아니다'는 쪽이다.
가구소득을 월 평균 200만원 가구와 600만원 가구 초등생 자녀의 학습시간 66분 차이 중 61분이 서설학원 등 '학교 외 학습시간'이 차지했다. 고등학생 자녀의 경우에도 학교외 학습시간이 200만원 미만일때에는 125분이었으나, 600만원 이상 고소득 가구에선 230분으로 급증했다. 결국 '학원'이 학력차이를 갈랐다는 얘기다. 보고서는 "교육성취가 평균학습시간과 비례한다는 가정을 하면 결국 부모세대의 교육적 계급지위가 부모의 학벌과 경제적 능력이 필요한 학원 등을 통해 대물림 되고 있다는 얘기"라고 분석했다.
한국교육 시스템은 이런 '금수저 리그'를 거친 학생들이 입시에 성공할 수 있는 방향으로 변모해 왔다. 특히 서울대 등 명문대학들이 도입한 수시 전형은 경제력을 바탕으로 체계적으로 준비할 수 있는 '있는 집 자녀'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게 교육 전문가들 지적이다.
안상진 사교육없는세상 부소장은 "주요대학의 수시전형의 일부인 학생부종합전형은 '교과(내신)'와 학교생활 이외 활동을 평가하는 '비교과 항목'으로 나뉘는데, 비교과쪽에서 불평등이 특히 커지고 있다"며 "금수저 학생들이 사교육을 통해 수준 높은 연구논문을 쓰거나 다양한 경시대회에서 수상하는 활동들을 흙수저 학생들이 따라가기가 버겁다"고 지적했다.
부모가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을 가진 자녀들과 그렇지 않은 '흙수저' 학생들이 동일한 조건에서 경쟁하는 환경이라고 볼 수 없는 게 대한민국 교육 현장의 현실인 것이다. 서울 강남 곳곳에 자리잡은 월 150만~200만원대 영어유치원은 흙수저 부모들은 엄두도 내지 못할 '그들만의 리그'의 출발점이다.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 영어를 마스터해 놓아야 중학교 진학과 동시에 고등학교 교과과정에 손을 댈 수 있다. 이런 초스피드 선행학습을 통해 특목고나 자사고에 진학한뒤 명문대에 골인하는게 꿈의 코스다.
서울 모 대학 영문학과 학생 고은수(20)씨는 "대학에 입학해서도 흙수저 학생들은 시험기간에도 아르바이트를 뛰어야 하므로 시험공부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며 "이러다 보니 성적기준으로 학교서 주는 장학금을 잡아볼 기회도 없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금수저들에게 밀리지 않으려는 안간힘을 쓰며 추격하는 흙수저들은 가족전체가 궁핍한 경제상황을 감내해야 한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5년말 기준으로 전국 에듀푸어(2인 이상 도시가구 중 빚이 있고 소득보다 지출이 더 많은 데도 평균보다 교육비를 더 쓰는 가구)는 약 60만6000가구로 추정됐다. 이는 자녀 교육비
에듀퓨어 가구의 수입은 전체 가구 평균보다 28% 적었지만 교육비로 85% 이상 더 투자했다. 월 평균 361만8000원을 벌어 소득의 26%인 94만6000원을 교육비로 썼고, 이로 인해 가구당 월평균 65만9000원의 적자를 냈다.
[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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