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전 대통령(65)을 파면한 이유는 대통령이 국민의 신임을 저버렸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의민주제 원리와 법치주의 정신을 훼손한 것이 헌법질서의 근간을 뒤흔들 정도로 '중대한 법 위반'이라고 봤다. 국민에게서 위임받은 권력을 '비선실세' 최순실씨(61·구속기소) 사익 추구에 동원했다는 의혹이 결국 박 전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 "대통령 헌법 수호 의지 없다"
헌재는 박 전 대통령 파면을 통해 얻을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판단했다. 이는 피소추인에게 '헌법 수호 의지'가 없다고 본 것과 관련이 깊다. 특히 국정농단 의혹이 본격적으로 제기된 뒤 박 전 대통령이 보인 소극적이고 부실한 대응 태도를 집중적으로 문제 삼았다. 국정농단 실체뿐만 아니라 의혹 제기 이후 언행을 문제삼아 "대통령의 헌법 수호 의지가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을 탄핵 결정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진실을 은폐해 권력에 대한 견제와 감시기능을 차단했다는 점도 지적했다. 권력분립의 취지를 무력화시켰다는 취지다. 헌재는 "박 전 대통령은 최씨의 국정 개입 사실을 철저하게 숨겼고, 그에 관한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이를 부인하며 오히려 의혹 제기를 비난했다"고 했다. 이어 "국회 등 헌법기관의 견제나 언론에 의한 감시장치가 제대로 작동될 수 없었다"고 했다.
탄핵소추 사유와 관련된 진상규명에 협조하지 않았던 점도 꼬집었다. 검찰 특별수사본부와 박영수 특별검사(65·사법연수원 10기)의 대면조사 요구, 청와대 압수수색 등에 응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나아가 박 전 대통령에게 법 위반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의지도 없었다며 "헌법과 법률 위배 행위가 재임 기간 전반에 걸쳐 지속적으로 이뤄졌다"고 말했다.
◆국정농단·권한남용이 핵심
파면의 근거가 된 쟁점은 크게 두 가지였다. 최씨에 의한 '국정농단'과 박 전 대통령의 '권한남용'이었다. 헌재는 최씨가 비선실세로서 국정에 영향력을 휘두를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박 전 대통령의 묵인이 있었다고 봤다. 연설문 유출에 대해서는 "대통령의 지시와 방치에 따라 '직무상 비밀'에 해당하는 문건이 최순실에게 흘러간 것은 국가공무원법 비밀 엄수 의무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또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과 운영에 걸친 전 과정에 청와대가 깊숙이 개입했다고 결론 내렸다. 헌재는 "미르·K스포츠재단의 임직원 임면과 사업 추진, 자금 집행, 업무 지시 등 운영에 관한 의사결정은 박 전 대통령과 최씨가 했다"며 재단 운영의 주체로 박 전 대통령을 명시했다.
나아가 대통령 지위 권한을 남용한 것은 "헌법과 국가공무원법, 공직자윤리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했다. 오직 최씨를 위해 사기업 인사에 개입하고 특정 회사에 특혜를 준 사실도 인정했다. 다만 대통령 권한남용 쟁점 가운데 '공무원 임면권 남용' 부분은 박 전 대통령이 직접적으로 관여한 정황이 분명치 않다며 탄핵 사유에서 배제했다.
◆세월호·언론탄합은 사유 안돼
헌재는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의 부실 대응은 '파면 사유'가 될 수 없다고 봤다. 생명권 보호 의무 위반과 직책성실 의무 위반 모두 소추사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헌재는 "세월호 사고는 참혹하기 그지 없으나 참사 당일 대통령이 직책을 성실히 수행했는지 여부는 탄핵절차 판단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성실하다'는 개념이 상대적이고 추상적이기 때문에 이처럼 모호한 의무규정을 가지고 대통령을 탄핵하기는 어렵다는 설명이다. 이는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에서 밝힌 입장을 재확인한 것으로 정치적 무능력과 정책 결정상 잘못 등을 이유로 탄핵 제도가 남용되는 것을 방지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대통령의 생명권 보호의무와 관련해서도 "재난 상황이 발생했다고 해서 대통령이 직접 구조활동에 참여하는 등 구체적이고 특정한 행위 의무까지 바로 발생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언론의 자유 침해도 인정되지 않았다. 헌재는 "박 대통령이 (정윤회) 문건 유출을 비난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세계일보에 구체적으로 누가 압력을 행사했는지 분명하지 않고, 대통령이 관여했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는 없다"고 했다.
헌재는 특히 쟁점 선고에 앞서 "국회 탄핵소추 가결 절차에 어떠한 흠결도 없다"며 '각하' 주장도 일축했다. 탄핵소추 의결부터 탄핵심판 선고까지 집요하게 절차에 이의제기를 해왔던 박 전 대통령 측의 주장에 조목조목 반박하며 조금의 빈틈도 남기지 않았다. 국회 탄핵소추를 발의하면서 사유 조사를 할지 여부와 표결 방식은 모두 "국회의 재량" "국회의원의 자유로운 의사"라고 못 박았다. 헌재 '8인 재판관 체제'에 대해
[김윤진 기자 / 박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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