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민서 신부 [한주형 기자] |
TV모니터 크기의 주판모양 묵주와 커다란 북이 걸려있다. 서울 강북구 수유동 농아선교회 성당의 모습이다.
청각언어장애인들은 수화로 묵주기도를 하기때문에 손에 묵주를 들고 있기 힘들다. 그래서 이곳에는 모두가 함께 볼 수 있는 커다란 묵주가 제대(祭臺) 옆에 있다. 또, 청각장애인들은 미사 중 종소리를 듣지 못한다. 그래서 북을 친다. 북의 진동은 몸으로 느낄 수 있기때문이다.
이곳 성당을 지키고 있는 박민서 베네딕또 신부(49)는 아시아 최초의 청각언어장애 사제다. 농아선교회 이현주 사무장의 수화통역으로 청각장애성당 건립을 준비하고 있는 박신부를 인터뷰했다.
"2살때 약을 잘못 먹고 청각을 잃었습니다. 부모님을 많이 원망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하느님이 저를 이런 방식으로 부르신거라 생각합니다. '왜 나를 농아로 만드셨냐'는 질문에 지금 제 모습으로 대답을 하신거죠."
부모님은 그가 운보 김기창 같은 훌륭한 청각장애 작가가 되기를 원했지만 박신부는 고교시절 미술학원에서 하느님을 만난다.
"그림을 가르쳐주신 선생님이 농아셨는데 그분을 통해 처음 가톨릭을 알았고, 신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청각장애인이 사제가 될 수 있는 길은 당시에는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박신부는 일반 대학에 들어가 산업디자인을 전공하고 애니메이션회사에 취직까지 했지만 청각장애인을 위한 사제가 되겠다는 생각은 오히려 커져만 갔다. 그때 그가 찾아간 사람이 정순오 신부(현 한강성당 주임사제)였다. 부모님이 모두 청각장애인으로 수화에 능통했던 정신부는 그에게 미국 유학을 주선했다. 26살이 되던해 그는 워싱턴DC 갈로뎃대학교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한다.
"너무 괴롭고 힘들었죠. 영어도 힘든데 영어 수화까지 배워야했으니까요. 한국어와 영어는 수화도 완전히 다르거든요. 정말 하느님이 나를 원하시는지 수없이 되물었어요."
갈로뎃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그는 성요셉 신학교에서 본격적인 신학공부를 시작한다. 하지만 시련은 또 닥쳤다.
"청각장애 학생을 위한 보조 프로그램을 운영하시던 오코너 추기경이 선종하시면서 프로그램 자체가 없어진거죠. 들을 수 없기 때문에 일반 학생과 똑같은 속도를 수업을 따라가는 건 불가능하거든요. 포기할 뻔 했는데 같은 장애를 지니고 계신 콜린 신부님의 도움으로 학교를 성요한 신학교로 옮겨 석사를 마칠 수 있었죠."
천신만고 끝에 귀국한 그는 서울가톨릭대에 편입해 2년6개월을 더 공부한 뒤 2007년 사제 수품을 받는다. 유학을 떠난 지 20여년만의 일이었다.
"자신들의 잘못으로 제가 장애를 갖게 됐다며 평생 괴로워하시다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이 가장 많이 났죠. 두분 의 사랑과 눈물이 저를 사제로 만들었고 저는 이제 그 사랑에 대한 보답을 하고 있는 거죠."
그가 사제가 되어 처음 제대 앞에 섰을때 전국각지에서 500여명의 청각장애인들이 그를 찾아왔다. 수화로 미사를 집전하는 신부가 나왔다는 건 그들에게는 구원과도 같은 일이었다.
"농아분들과의 미사는 일반 미사보다 2배정도의 시간이 걸려요. 말보다 수화가 느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세상속에서 단절되어 있는 분들에게 일주일에 한 번 있는 미사는 유일한 소통의 시간이기도 하거든요. 되도록 많은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노력해요."
지금 미사를 드리고 있는 수유동 건물은 조건이 좋지 않다. 수녀원 건물을 빌려서 쓰고 있는데다 극장식이 아니어서 수화미사에는 적합하지 않다. 농아신자들은 신부의 손모양을 보고 미사를 드리기때문이다.
"신자분들을 비롯한 여러분들의 도움으로 성동구 마장동 인근에 부지를 마련했어요. 계획대로 된다면 올해 안에 청각장애인 성당 건립 작업이 시작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박신부는 성인들 중 요한 마리아 비안네를 특별히 흠모한다. 18세기 성인 비안네 신부는 박신부처럼 사제가 되기까지 수많은 시련을 거쳤다. 퇴학, 나폴레옹 군대 징집, 질병 등을 겪으며 끝내 사제의 길을 포기하지 않은 비안네 신부는 존재 자체로 큰 가르침이다.
"마음속의 고통을 이기려면 그 고통을 받아들여야 해요. 세상에 편안한 삶을 사는 사람은 없어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처럼 고통을 받아들일때 그 고통을 이겨낼 힘이 생기는 것 같아요."
박신부의 취미는 서예다. 차분
"유일한 농아신부이다보니 찾아주시는 분들이 많고 바쁘게 지낼 수 밖에 없어요. 그렇다보니 기도하고 반성하는 영적 생활을 할 시간이 별로 없어요. 그게 가장 아쉬워요. 초심으로 돌아가고 싶을때 가장 생각나는게 서예예요."
[허연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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