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법원이 박근혜 전 대통령(65)의 구속영장을 발부한 것은 사실상 그가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건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국가 최고 책임자였던 박 전 대통령은 최순실씨(61·구속기소) 등 측근들과 공범으로 얽힌 혐의만 13가지에 이른다. 전직 대통령 비서실장부터 삼성 부회장까지 주요 관련자들이 이미 구속됐고, 박 전 대통령이 그 동안 수사와 탄핵심판에 출석하지 않은 채 혐의를 부인해 온 점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 "주요 혐의 소명"
서울중앙지법 강부영 영장전담판사(43·사법연수원 32기)는 이날 오전 3시께 박 전 대통령의 영장을 발부하면서 "주요 혐의가 소명되고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어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와 박영수 특별검사팀 수사 결과 박 전 대통령의 혐의를 입증할 만한 단서가 상당히 확보됐다고 판단한 것이다. 법원은 이번 사건 수사의 시발점이자 헌법재판소 탄핵 결정의 주요 사유가 됐던 '미르·K스포츠재단 모금 강요' 혐의도 무겁게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영장심사 결과는 일련의 혐의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짐작할 지표가 된다. 따라서 검찰은 남은 수사와 공범들의 재판에서 더욱 탄력을 받게 됐다. 반면 박 전 대통령 측은 정식 재판에서 무죄를 받기 위해 대책 마련에 고심할 것으로 보인다.
이날 아침 김수남 검찰총장(57·16기)은 굳은 표정으로 말을 아꼈다. 김 총장은 출근길 박 전 대통령의 기소 시점과 우병우 전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50·19기) 수사에 관한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 없이 8층 사무실로 향했다.
◆ 추가조사 후 4월 기소
검찰은 다음주 박 전 대통령을 추가 조사할 것으로 보인다. 최순실씨 등 관련자들과의 대질신문이 이뤄질 수 있다. 다만 박 전 대통령의 정신적 충격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전직 대통령 예우를 고려해 무리하게 서두르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조사방식은 검사와 수사관을 구치소로 보내는 '출장조사'가 유력하다. 원칙적으로 박 전 대통령을 검찰청사로 불러 조사해야 하지만 경호·안전 문제가 걸림돌이다. 박 전 대통령이 구치소 밖으로 나오면 청와대 경호가 재개되기 때문에 이를 협의해야 한다. 박 전 대통령이 검찰 조사를 거부해 수사 계획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의 구속기간(20일)이 만료되는 4월 19일 전까지 보강 수사를 마치고 그를 재판에 넘길 예정이다. 같은달 17일부터 대선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기 때문에 정치적 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소 시점을 앞당길 수도 있다.
검찰은 이 사건 핵심 쟁점으로 꼽히는 '삼성의 재단 출연금 204억원'에 대해 뇌물과 직권남용·강요 혐의 중 어떤 혐의를 적용할 지 정할 예정이다. 앞서 검찰은 두 가지 혐의를 중복 적용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기소 시점에 정리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 10월 중순 선고할 듯
박 전 대통령 1심 재판은 5월 9일 대선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될 전망이다. 법원에 사건이 접수되면 통상 2주 후 첫 준비기일을 연다. 4월 중 몇 차례 준비기일을 열어 심리 계획을 확정한 뒤 본격 재판을 열게 된다. 박 전 대통령 재판은 삼성 뇌물 사건을 진행중인 기존 재판부가 맡거나 아예 새로운 재판부가 전담할 수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가 최순실 씨의 삼성 뇌물수수 혐의를,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진동)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49·구속기소) 등의 뇌물공여 혐의를 심리 중이다.
박 전 대통령은 이 법원 417호 대법정에서 재판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법원은 국민적 관심과 사건의 중대성 등을 고려해 법정 내 촬영을 일시적으로 허용할 가능성이 있다.
1심 선고는 늦어도 10월 중순에는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형사소송법은 1심에서 피고인의 구속 기간을 기소 이후 최장 6개월
전직 대통령이 법정에 서는 것은 22년 만이다. 앞서 노태우·전두환 전 대통령은 12·12 군사반란 및 불법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로 1995년 12월 구속기소됐다. 1심 선고까지 총 8개월이 걸렸다.
[이현정 기자 / 조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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