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65·구속기소) 재판의 첫 증인신문에 출석한 증인들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청와대가 개입한 의혹에 대한 증언을 했다. 반면 박 전 대통령 측 변호인들은 본질에서 다소 벗어난 질문을 하는 등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2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 심리로 박 전 대통령의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혐의 등에 대한 3회 공판이 진행됐다. 재판부가 최순실씨(61·구속기소)의 뇌물사건을 병합해 심리하기로 결정하면서 이날 두 사람은 변호인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앉았다. 1회 공판 때와 마찬가지로 박 전 대통령은 최 씨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점심 식사 후 오후 공판이 개정될 때 최 씨가 박 전 대통령을 흘깃 쳐다보며 법정에 들어섰지만 박 전 대통령은 재판부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있는 모습도 포착됐다. 두 사건이 병합되면서 검찰과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함께 법정에 나와 번갈아가며 신문을 진행했다.
박 전 대통령 변호인단은 다음달 1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49·구속기소),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61·구속기소) 등의 공판기록을 대상으로 한 서증조사를 증인신문 뒤로 미루자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 측 이상철 변호사(58·사법연수원 14기)는 "주요 쟁점인 삼성사건에 대해 기본적인 증인신문도 안 된 상태에서 다른 재판부에서 진행된 증인신문 기록을 먼저 열람하는 것은 선입관을 방지해야 한다는 형사소송법 취지에 반한다"고 주장했다. 도태우 변호사(48·41기)는 "검찰이 낭독하는 시간만큼 변호인 의견 기회를 달라"며 "이런 건의가 받아들여지지 않고 그대로 이 부회장 재판의 공판 기록 조사가 강행된다면 변호인단은 심각한 사태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서울중앙지검 한웅재 형사8부장(47·28기)은 "똑같은 이야기를 또 반복하고 있다"며 '의도적 시간끌기'임을 지적했다. 절차와 관련한 약30분간의 변호인 측 주장이 끝나고서야 첫 증인으로 출석한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사장에 대한 증인신문이 시작됐다. 검찰은 이 부회장의 승계작업을 위해 삼성그룹 합병이 필수적이었다고 보고 이를 도와주는 대가로 박 전 대통령이 삼성 측에서 뇌물을 받았다고 보고 있다. 주 전 사장은 당시 국내 증권사 중 유일하게 합병 반대 애널리스트보고서를 낸 한화증권의 대표였다.
주 전 사장은 불과 5m 정도 떨어진 피고인석에 앉아 있는 박 전 대통령을 겨냥해 '피고인 박근혜씨'로 꼬박꼬박 부르며 증언을 이어갔다. 특히 박 전 대통령이 올해 1월 1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삼성물산 합병에 대해 "저도 국민연금이 바로 대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고, 국민연금도 챙기고 있었다. 그것은 어떤 결정이든 국가의 올바른 정책 판단"이라고 밝힌 대목에 대해 매우 부적절했다고 맹공을 가했다.
특검이 공개한 진술조서에 따르면 그는 박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정신나간 주장이다"며 "국제 자본의 국내 시장을 향한 불신만 초래할 것이고 이 발언으로 향후 국제소송의 빌미도 제공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변호인 측이 무슨 의미인지를 캐묻자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합병 결정에) 영향을 줄 소지가 있다"며 "정책적 판단에 영향을 줬다는 식의 말을 한 건 위험하다"고 설명했다.
주 전 사장은 국민연금이 삼성물산 합병에 찬성할지 결정하는 과정에 청와대가 개입한 정황이 있다고도 증언했다. 그는 "국민연금 주식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 위원인 박창균 교수로부터 투자위원회에서 의사 결정을 한 것은 '청와대의 뜻'이라는 말을 들었다"며 "그 말을 듣
김성민 전 국민연금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 위원장, 원종욱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등에 대한 증인신문도 진행됐다.
[채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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