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돈 많이 벌어 온대. 그럼 맛있는 것도 사주고..."
오늘도 어린이집 선생님은 나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우는 아들 녀석에게 이렇게 말한다. "돈 많이"라는 대목에서 번쩍 들어 올리는 선생님의 양손이 유독 크게 느껴진다.
아이가 많이 울 때마다 울려퍼지는 이 말은 맞는 말이면서도 들을 때마다 목구멍에 뭔가 '켁' 걸린 듯하다.
세살배기 아이가 물질 만능주의에 노출된 듯한 불안감이 일부 있다. 실제로 아이는 출근길 나와 헤어질 때면 과자나 장난감을 사오라고 말하곤 한다. 어린이집에서 가장 늦게까지 남아있는 2명의 아이가 있는데 그 중 한 명이 내 아들이다. 왠지 미안한 마음에 아이를 데리러 갈 때면 사탕 하나라도 사가지고 갔다. 그랬더니 이 녀석, 엄마가 퇴근하고 오면 뭔가 꼭 손에 들려져있다는 것을 알아챈 모양이다.
어린이집 선생님의 말이 날 불편케 하는 이유는 정작 따로 있다. 단지 돈을 벌기 위해 내가 일을 하러 가는 게 아닌데 이를 표현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엄마도 꿈이 참 많단다"란 말을 하기엔 현실이 너무 치열하고, 피곤하다. 아이를 낳고 직장 생활을 병행한 이후 하루도 같은 날이 없다. 일단 아이가 변화무쌍하고, 그런 아이를 돌봐야하는 워킹맘, 워킹대디의 여건이 결코 뜻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야간 당직날이었다. 나 대신 일찍 집에 들어가 아이를 돌보기로 한 남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회사 호출을 받아 급히 나가봐야한다는 것이다. 시댁도 친정도 모두 지방인 난 후배들에게 부랴부랴 전화를 했다. 더 할 아쉬운 소리가 남았을까 싶지만, 또 하게 되는 게 워킹맘인 것 같다.
5월 첫째주 이른바 '황금연휴'는 우리 가족에겐 고난의 행군이었다. 이사를 앞두고 정신없던 때 엄마, 아빠는 연휴에도 번갈아 회사를 나가야하는데, 어린이집은 내리 쉬었기 때문이다. 도우미 선생님까지 관두셔서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 결국 시어머님께 기차표를 끊어드리고 도움을 요청해야했다.
이러저러한 어려움을 티 낼 수가 없어 더욱 어렵다. 아기가 한창 분유를 먹을 때 내 몸에선 분유 냄새가 곧 잘 났다. 씻어도 워낙 아이와 밀착해서인지 잘 사라지지가 않아 향수를 뿌리고 다닌 적이 있다. 1박2일 워크숍, 부서 전원이 참석하는 자리 빠질 수가 없었다. 하지만 자다가 깨 엄마가 없으면 정말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우는 아이이기 때문에 새벽 1시라도 돌아와야했고, 주말 내내 끙끙 앓으면서도 아이를 돌봐야했다.
사실 이런 물리적인 어려움쯤은 이제 어느 정도 단련이 됐다. 닥치면 다 하기 마련인 게 또 워킹맘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단련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단순히 돈이란 물질로 보상 받을 수 있을까. 보상받는다고 한들, 정신적으로 피폐하다면 아무 소용없는 것 아닐까.
따지고 보면 워킹맘이라서 포기하는 게 적지 않아 보상의 의미가 무색할 때가 많다. 자신의 꿈이 뭐였는지 돌아보는 것조차 사치일 정도로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간다는 엄마, 육아 휴직으로 승진 기회를 놓친 엄마, 아이 둘 돌보느라 자기 개발 기회는 물론, 본인 건강 챙길 여력도 없는 엄마, 육아 분담 문제로 남편과 다퉈 사이가 멀어진 엄마, 자녀와 대화가 단절돼 고민인 엄마 등 워킹맘의 고충은 끝이 없다. 10년 전, 20년 전에도 같은 고충을 토로해 왔지만 크게 변한게 없다는 데에서 더욱 좌절할 뿐이다.
무엇보다 워킹맘이라서 겪는 서러움이나 자녀에 대한 죄책감은 결코 돈으로 달래줄 수 없다. "거, 얼마나 돈을 더 벌려고 그러니? 애나 잘 키워라" , "쯧쯧, 이런 핏덩이를 맡기고 간 엄마는 도대체 누구에요?" 등의 말을 여전히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많다. 별 생각없이 한 말일 수 있다. 하지만 직장과 가정 생활 사이를 위태롭게 걷고 있는 워킹맘들에게 이런 말들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전업주부가 아닌 워킹맘을 택한 것이 결국 자신의 선택이란 죄책감 때문이다.
이런 통계가 있다. 몇 년 전 보건사회연구원에서 내놓은 것으로 우리나라에서 자녀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드는 비용이 평균 3억원이란 통계다. 웬만한 소득수준을 보장받는 맞벌이 부부여도 충당하기 어려운 비용이다. 치솟는 물가, 집값에 이런 어마어마한 자녀 양육 비용을 그나마 충당하려면 맞벌이는 선택이라기보다 필수다. 그런데도 단지 워킹맘이란 이유로 주변으로부터 부정적인 시선을 받아야만하는 걸까.
어린이집 선생님은 그저 아이의 눈높이에서, 가장 빠르게 워킹맘의 신분을 이해시키기 위한 말로 "돈 많이 벌어 온대"라고 우는 아이를 달랬을 수 있다. 하지만 돈이란 것과 맞바꾸기에는 워킹맘에게 강요되는 희생과 헌신, 넘어야 할 편견의 벽 등이 너무 높다. 이로 인해 피폐해진 정신적인 부분은 어디에서도 보상받기 힘들지만 하루하루 버티고 있는 워킹맘들이다.
대통령의 딸 문다혜씨가 회사를 관두고 전업주부가 됐을 때 아버지에게 "사회에서 도태될 것이 두렵다"고 푸념하자 문재인 대통령은
[디지털뉴스국 방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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