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 연합뉴스 |
오는 29일까지 보호의무자의 동의를 받지 못하면 정신병원 환자를 퇴원시키도록 한 '정신건강복지법'이 시행되면서 후견인 지정·감독 업무를 하는 법원과 환자를 관리하는 정신병원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동의 절차에 시간이 오래 걸려 자칫하면 보호의무자가 없는 환자가 무더기로 퇴원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12일 법조계와 의료계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시행된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정신건강복지법)'에 따라 강제입원 정신질환자에 대한 후견인 지정 업무가 전국에서 2천여건 추가 발생할 것으로 추산됩니다.
이 법은 기존 '정신보건법'에 따른 정신질환자의 강제입원이 환자의 인권을 지나치게 침해한다는 지적에 따라 강제입원 요건과 심사를 강화하고 입원 기간을 단축하는 내용으로 제정, 시행됐습니다.
새 법은 기존 강제입원 환자의 입원을 연장하려면 후견인 등 보호의무자의 동의를 받도록 했습니다. 기한은 이달 29일까지입니다.
동의를 받지 못하면 병원은 환자를 내보내야 합니다. 그런데 행려자 등 특별한 연고가 없는 환자의 입원 연장 과정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이들은 보호의무자가 없습니다. 따라서 법원이 공공후견인을 지정한 후 동의 여부를 정하는 절차를 밟습니다.
법원은 적합한 후견인을 지정하고, 후견인은 법원 감독하에 환자의 상태 등을 살펴 기간 연장 동의 여부를 결정합니다.
전국 병원에 입원한 무연고 정신질환자는 2천명 이상으로 추정됩니다. 이들의 후견을 맡을 인력 풀이 넉넉지 않은 데다, 후견인이 환자의 상태를 살펴 입원 연장의 필요성을 확인하려면 상당한 기간이 필요합니다.
각 법원도 후견 업무를 맡는 판사 등 인력이 한정돼 업무 부담이 우려됩니다.
게다가 입원을 연장하려면 후견인 동의 외에도 정신과 전문의 2명 이상의 진단을 받은 후 관할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입원 기간 연장 심사까지 받아야 해 이달 29일까지 절차를 끝내기에는 빠듯합니다.
의사의 진단을 통해 지자체장이 환자를 강제입원 시키는 소위 '행정입원' 방식도 있지만, 마찬가지로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로워 실효성이 없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재경지법의 한 가사재판 전담 판사는 "후견인 지정 업무만으로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데다 이들이 환자의 상태를 검토해 동의 여부를 결정하는 것도 관리·감독해야 해 이달 29일 전에 모든 절차를 끝내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병원들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체계적인 환자 관리 시스템에 구멍이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의료계의 한 관계자는 "입원 중인 환자를 별다른 대책 없이 퇴원시켰다가 문제가 불거질 경우 책임을 고스란히 떠안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각에서 나옵니다. 지난해 5월 법이 제정된 후 유예기간인 1년 가까이 별다른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점에서 정부의 책임론도 제기됩니다.
소관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개정해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었지만, 기본권 침해 논란에 휩싸여 속도를 내지 못하다가
'의료문제를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 대표인 이인재(44) 변호사는 "복지부가 적절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상태에서 무연고 정신질환자의 후견인 지정 신청이 대거 들어오면 법원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며 "보완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