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집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의사가 돼야 한다는 말을 귀가 따갑게 듣고 자랐다. 농부가 되고 싶었지만 입 밖에 꺼낼 수 없었다. 프랑스 보르도 의대에 진학해 6년간 의학을 공부했지만 늘 마음이 평온하지 않았다. '왜 사람은 죽어야 할까, 왜 고통 받아야 할까' 삶에 관해 풀리지 않는 의문들로 괴로웠다. 나를 찾고 싶었다. 의사의 길을 박차고 1979년 스물다섯 나이에 예수회 프랑스 관구에 입회하면서 성직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1년간 성철스님을 연구한 끝에 '퇴옹성철 선사의 생애 및 전서'라는 논문으로 프랑스 파리 7-드니 디드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해 가을학기부터 지금까지 서강대에서 불교를 가르치는 프랑스인 교수 서명원 가톨릭 신부 얘기다.
"본명은 베르나르 스네칼, 법명은 '천달(天達)'입니다. 1986년 당시 서강대 총장이었던 서인석 신부님이 서명원이라는 한국 이름을 지어줬어요."
한복을 차려 입은 서명원 교수를 최근 서강대에서 만났다. 그는 1996년 선(禪)수행에 입문하면서 편한 옷차림을 위해 한복을 입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복만 입는다.
"한국에 처음 왔던 1985년 서인석 신부님을 따라 어느 사찰에 갔어요. 그윽하면서도 이국적인 느낌의 절 분위기가 신비했습니다. 불교는 제가 믿는 종교와는 다른 그 무엇, 마치 먼 바다처럼 느껴졌습니다. 이때부터 인연이 시작됐죠."
한국 절의 묘한 분위기에 끌렸던 파란 눈의 신부는 1990년까지 한국에서 한국어와 한국 종교 등을 연구했다. 이후 신학 공부를 위해 5년간 파리로 갔다가, 1995년 한국에 뿌리를 내렸다. 성철스님 연구를 박사 논문 주제로 삼은 것이 계기가 됐다. 성철스님은 고려시대 승려 지눌이 강조했던 '돈오점수(문득 깨달음에 이르는 경지에 이르려면 꾸준한 수행이 뒤따라야 한다)'를 부정하고 '돈오돈수(단박에 깨달아서 더 이상 수행할 것이 없는 경지)'가 옳다고 주장했다.
"1993년 성철스님 입적 이후 로버트 버스웰 교수가 쓴 '파란 눈 스님의 한국 선 수행기'를 숙독하던 중 성철스님이 왜 돈오점수를 반박했는지 알아보고 싶어졌어요. 결막염에 걸릴 정도로 성철스님의 법어집 등을 깊이 탐독한 끝에 2004년 박사학위를 받았고, 논문을 쓰고 난 이후 성철스님을 더 면밀하게 연구했지요."
서 교수는 성철스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지금은 성철스님의 돈오돈수를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본다. 그는 심지어 돈오돈수를 강조했던 성철스님조차 돈오돈수적인 삶을 살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때 지눌 비판자였지만 지금은 한국 스님 중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지눌을 꼽을 정도로 그의 생각은 달라졌다. 서 교수는 6년 전부터 지눌을 본격적으로 탐구하고 있다.
"성철스님이 20세기 후반 한국 불교계의 가장 큰 인물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돈오점수'가 옳다고 생각합니다. 부처가 되기 위해서는 꾸준히 수행해야 합니다. 성철스님은 지눌을 비판했는데, 한국 불교를 연구할수록 오히려 지눌스님이 옳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성철스님은 독서가 수행에 방해된다고 하셨는데, 많은 스님들이 이 가르침을 따르면서 불교를 깊이 공부하지 않게 됐습니다."
가톨릭 신부이자 불교학자인 서명원 교수가 생각하는 불교의 본질은 무엇일까. 그리스도교와 불교는 화합할 수 있을까.
그는 남녀가 결혼할 수는 있지만 남성이 여성이 되고, 여성이 남성이 될 수 없는 것처럼 두 종교가 하나가 될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불교는 삶이 온통 고통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불교의 본질은 윤회를 벗어나기 위해 해탈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반면 그리스도교는 고통과 죽음이 없는 세계, 즉 천국에 가는 것을 추구하지요. 불교는 '자아가 없다'는 '무아'를 강조하고, 그리스도교는 '자아가 있다'고 봅니다. 불교는 '참인 나'와 '거짓인 나'를 구분해서 '참인 나'만 추구하는 반면 그리스도교는 영원히 살 수 있다고 보죠."
수 십 년간 불교를 연구했지만 그는 개종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오랜 시간 방황했지만 저의 종교적인 요람은 예수그리스도입니다."
"불교에 매력을 느끼면 불자가 되는 것이고, 기독교에 매력을 느끼면 기독교인이
[신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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