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피해자 김군자 할머니 별세…바란건 오직 '진심 어린 사과'
지난 23일 만 89세로 세상을 떠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군자 할머니의 빈소에는 고인을 애도하는 각계의 조문 발길이 이어졌습니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차병원 장례식장 특실에 차려진 빈소에 놓인 영정 속 할머니는 분홍색 저고리를 곱게 차려입고 생전에 끔찍했던 '기억'을 다 잊은 듯 미소 짓고있었습니다.
영정 양옆으로는 '대통령 문재인', 국무총리 이낙연'이라고 적힌 조화가 나란히 놓였습니다.
김 할머니는 10대에 부모를 여의고 친척 집에서 생활하다가 17살에 중국 지린 성 훈춘 위안소로 강제동원돼 3년간 일본군의 '성노예' 생활을 했습니다.
해방 후 고향에 돌아와 위안소로 끌려가기 전 결혼을 약속했던 남자와 생활했습니다.
하지만 남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때부터 1998년 나눔의 집으로 오기까지 할머니는 혼자 살았습니다.
할머니는 슬하에 자녀를 두지 않아 장례는 사회복지법인 대한불교 조계종 나눔의 집이 맡아 불교식으로 진행됩니다.
안신권 나눔의 집 소장은 "모든 걸 다 주고 가셨다"는 한 마디로 할머니를 기억했습니다.
안 소장은 "김군자(세례명 요안나) 할머니는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서 죽기 전에 위안부 문제를 꼭 해결해달라는 마음을 담아 위안부 피해자 김순덕(2004년 별세) 할머니가 그린 '못다핀 꽃' 그림을 선물했었는데 한을 풀지 못하고 가셨다"고 안타까워했습니다.
하지만 생전에 모은 돈 2억5천여만원을 모두 기부하고 떠나셨다고 했습니다.
빈소에는 정치권을 비롯한 각계 인사의 추모 발길이 종일 잇따랐습니다.
빈소가 차려진 낮부터 오후 5시 사이 남경필 경기지사, 남인순 국회 여성가족위원장, 영화 '귀향'의 제작자 조정래 감독, 배우 유지태 등이 빈소를 찾아 고인을 기렸습니다.
남경필 경기지사는 "할머니께서는 평소 아무것도 필요 없다. 일본의 책임 있는 정치인의 진심 어린 사과면 족하다고 하셨다"며 "문재인 정부가 일본 정부와 대화와 협상을 잘 이끌어가길 희망한다"고 말했습니다.
조정래 감독은 "따뜻하셨다. 말씀이 많은 편은 아니셨지만, 국악공연을 보고 손뼉 치며 좋아하신 모습이 눈에 선하다"라고 고인을 기억했습니다.
저녁 무렵부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89) 할머니,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 이재명 성남시장, 강경화 외교부 장관, 박원순 서울시장 등이 빈소를 찾았습니다.
대구에서 한걸음에 빈소를 찾은 이 할머니는 "아픈데 없이 잘 살아"라고 고인의 영면을 기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일본 사죄를 받아내 피해자들의 한을 풀겠다는 다짐을 잊지 않았습니다.
오후 8시 5분께 빈소를 찾은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국민이 정서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황에서 피해자 중 또 한 분이 흡족한 답을 못 얻고 가셨다"며 "외교부는 합의 내용이나 협상 경과를 좀 더 꼼꼼히 검토해보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려 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녁에 아내와 함께 빈소를 찾은 이재명 성남시장은 "마침 이번 정부가 재협의, 합의무효와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일본과 제대로 협의를 해서 할머니들 한도 풀어드리고 일본이 군국주의 이름으로 세계인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다른 나라를 불행에 빠뜨린 일이 더는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오후 10시 조문한 뒤 대구에서 올라온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와 만나 근황을 물었습니다.
박 시장은 "김군자 할머니도 그렇고 다들 건강하시다가 언제부터 휠체어 타시고 그러다가 돌아가셨다"며 "이용수 할머니는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는 적어도 150세까지는 사셔야 한다"고 부탁했습니다.
그는 "아름다운 재단이 만들어진 2000년, 김군자 할머니가 고아들을 위해 써달라며 5천만원을 내놓으셨다"며 "제 기억으로는 그 돈을 기초로 해서 한 2억∼3억원의 기금이 모였을 것"이라며 남다른 인연을 떠올렸습니다.
방송인 김구라 씨도 아들 동현 군과 함께 조문했습니다.
김 씨는 2002년 인터넷 라디오에서 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비하 발언으로 2012년 4월 방송
발인은 25일 오전 8시 30분 치러집니다. 나눔의 집에서 노제를 한 뒤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하고 나눔의 집 추모공원에 안치됩니다.
[MBN 뉴스센터 / mbnreporter01@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