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후 2시 국내 최고층(123층)을 자랑하는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전망대에서는 여느 때처럼 수백명 관광객이 기념 촬영에 여념이 없었다.
같은 시각 전망대에서 내려다보이는 잠실역 사거리 대로에선 차량이 일제히 멈춰섰다. 전국에서 일제히 실시되는 훈련은 민방공 대피훈련 '사이렌'이 울렸기 때문이다. 일부 시민은 창밖에 멈춰선 차량들을 보고 훈련상황을 알아채고 "여기는 왜 안 하나"라고 서로 묻기도 했다. 전망대에 있던 대부분 시민들은 오후 2시부터 20분간 진행된 전국 민방공 대피훈련을 전혀 알 수 없었다. 정부의 경보방송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롯데 측 관계자는 "쇼핑몰, 영화관 등이 있는 롯데월드몰에는 경보방송을 했지만 전망대가 있는 롯데월드타워는 경보 방송 의무가 없어 간단히 '훈련중'이라는 안내 멘트만 했다"고 설명했다. 경보 대신 방송했다는 이 안내멘트마저도 전망대 내 음악과 소음에 묻혀 알아들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정부는 올해 1월 민방위기본법 개정안을 시행하면서 민방위훈련을 비롯한 비상사태 발생 시 대형마트, 영화관 등 다중이용 건물 관리주체로 하여금 의무적으로 민방위 경보방송을 하도록 했다. 그러나 민방위 경보전파 의무대상 건축물은 버스터미널 철도역사 등 운수시설, 대형마트 백화점 쇼핑몰 등 3000㎡ 이상 대규모 유통업 점포, 상영관 7개 이상 영화관 등으로 제한됐다. 어느 시설보다 위험한 초고층 빌딩의 전망대는 아예 포함되지도 않았다. 시민들 불편을 고려한 조치로 보이나 국내 최고층 빌딩으로 공습과 테러 표적 1순위가 될 수 있는 곳이 전국단위 훈련에서 경보방송조차 하지 않는 것은 상식 밖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전망대를 이용하던 한 시민은 "이렇게 높은 건물은 미국의 9.11 테러처럼 큰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데도 너무 안이한 건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서울 도심내 에서도 통행차량 훈련 협조와 통제가 미흡한 부분도 일부 있었다. 광화문 세종로 사거리에서는 두시 정각 사이렌이 울렸음에도 모든 차량들이 약 1분간 가던 길을 계속 주행했다. 운전자는 차량을 도로 오른쪽에 정차한 뒤 시동을 끄고 라디오 방송을 청취하도록 돼있으나 지키는 차량은 드물었다.
광화문 지하철역 입구 주변에서는 종로구청 관계자 등이 노란색 조끼를 입고 시민들을 민방공 대피소(지하철역사)로 안내했으나 통행하는 시민들 대다수는 각자 가던 길을 계속 갈뿐 안내를 따르지 않았다. 광화문 남측광장 세월호 천막에 있는 자원봉사자들 대부분 경보발령에도 하던 일을 지속하며 자리를 뜨지 않았다. 한 자원봉사자는 "사이렌 소리는 들었으나 대피소로 들어가야 한다는 안내는 누구에게도 받은 바 없다"고 말했다. 남측광장에서 농성장 시설관리 임무를 수행하던 한 의경은 "경보발령시 광장내 시민들을 대피시키란 지시를 전달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전시 주민들의 대피를 주도해야 할 행정안전부는 정작 자신들 조차도 소속 공무원 1인 당 1개의 방독면을 채 갖추지 못한 사실도 드러났다. 행안부 관계자는 방독면을 왜 일부 인원들만 챙겨가고 있느냐는 기자 질문에 "일부 직위에만 방독면이 보급돼 있다"고 답했다.
접경지역인 경기도 연천군 중면에서도 주민 참여율은 저조했다. 주민등록상 인구가 223명인 중면은 2014년 10월, 북한군이 풍선에 매달린 대북 전단을 향해 14.5mm 고사총 60여발을 발사해 면사무소 앞 마당에 탄피가 떨어졌던 곳이다.
면사무소와 횡산리에 건축 계획상 89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피소가 총 2개 설치돼 있지만 이번 훈련땐 대피소 마다 10명 안팎의 주민이 참여하는데 그쳤다
[지홍구 기자 / 임형준 기자 / 양연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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