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컴퓨터공학부 석사과정에 재학중이던 한준희 씨(23)는 지난해 글로벌 IT기업 구글에서 깜짝 입사제의을 받았다. 한씨는 석사 1학년이던 지난 2015년 한 국제 프로그래밍 대회에 참가해 특별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다. 그 당시 구글이 그를 '콕' 찍어 영입리스트에 올려놓은뒤 "파격 대우를 해줄테니 학교를 그만두고 함께 일하자"며 집요하게 러브콜을 보내온 것이다 . 한씨가 '오케이'하자 전문직 취업비자(H1B)도 일사천리로 나왔다. 컴퓨터 알고리즘을 전공한 한씨는 올해초부터 미국 실리콘 밸리 구글 본사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 서울대 공대 관계자는 "실리콘밸리 기업은 한번 꽂힌 인재는 절대 놓치지 않는다"며 "최근 실리콘밸리에서 국제대회 수상경력이 있는 서울대 학생들을 스카웃하려는 제의가 쏟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로선 한명이 아쉬운 4차산업혁명 시대 인재들을 줄줄이 실리콘밸리에 뺏기고 있는 셈이다.
12일 매일경제가 입수한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해외취업 사례조사 결과'에 따르면 최근 3년간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미국 IT 대기업에 해외 인턴십 자격으로 채용된 석·박사 과정 학생이 총 11명에 달한다. 컴퓨터공학부 석·박사 과정 졸업생이 연 50여명 안팎에 불과한 점을 감안하면 정원의 5분의 1 정도가 실리콘밸리로 떠낸 셈이다.
학교측은 지난 10년간 한국을 떠나 구글 페이스북 등에 취업해 실리콘밸리에 둥지를 튼 컴퓨터공학 분야 서울대 인력(학·석·박사)만 40여명에 달하고, 유럽 등 다른 지역으로 이직한 인원까지 포함하면 100명을 웃돌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관계자는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과거엔 '경력자'나 미국 대학 연구실의 '포닥(박사 후 연구원)'만 중점적으로 채용했다"며 "미국이 3~4년 전 본격적인 경기회복세를 탄 이후엔 채용을 전제로 한 인턴십을 활용해 국적과 경력을 불문하고 재학생까지 싹쓸어 담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학부 홍민성 씨(28·여)도 3년전 세계 최대 소셜네트워크 서비스 기업인 페이스북 '구애'를 받고 현재 페이스북 본사 검색 인프라 팀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 페이스북은 홍씨의 입사전 여성 컴퓨터 공학자들이 모이는 국제 학회에 참가하는 경비 전액을 지원했고 해당 국제학회장에서 홍씨를 만나 즉석 입사면접을 치른 후 일사천리로 홍씨를 영입했다고 한다.
이러다 보니 서울대 내부에서는 무서운 기세로 인력들을 흡수하는 '인재 블랙홀' 미국 IT 대기업들의 '표적'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화숙 서울대 컴퓨터공학부장은 "국내 연구진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것은 뿌듯한 일"이라면서도 "한 해 배출 인원이 턱없이 모자란 상황에서 그나마 있는 인재들마저 해외로 뺏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공존하는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지난 7월 장병탁 교수팀이 세계 최대 자율이동로봇대회에서 전 세계 100여개 대학을 제치고 압도적인 점수차로 우승컵을 거머 쥐었고 지난 8월 하순회 교수팀은 컴퓨터 비전 및 패턴 인식 분야 최고 권위 세계대회에서 딥러닝 기반의 물체 인식 기술을 개발해 우승을 차지하는 등 승전보가 잇따르고 있다. 국내에서만 통했던 IT분야 인재들이 세계 무대에서도 먹혀 들기 시작한 것이다.
4차 산업혁명 핵심 분야인 컴퓨터공학 부문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국내 우수 인재들이 해외 유수의 IT기업에 속속 진출하는 것은 자랑스런 일이지만 문제는 국내 기술업계의 '인재 공동화'가 우려된다는 것. 서울대 컴퓨터공학부는 1년에 평균적으로 학사 50여명, 석사 30여명, 박사 20여명 내외의 극히 한정된 인력을 배출한다. 매년 석·박사 배출인원의 10% 가까이 해외로 속속 빠지게 되면서 핵심 산업 분야의 연구개발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산업계와 학계의 경고다.
박근수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는 "컴퓨터공학부 정원 자체가 적다보니 지난 3년간(2014~2016) 국내 대기업에 취업한 서울대 컴퓨터공학 석·박사 인력은 64명 수준"이라며 "'알파고' 바람 이후 국내 기업들 수요의 반의 반도 못 채우는 데 해외로 모두 빠지게 되니 정말 큰 일"이라고 지적했다.
인재들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1차적 요인은 역시 대우다. 애써 전문가를 양성해도 처우가 미국 등 선진국의 절반 수준도 따라 잡지 못하다 보니 최상위권 학생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는게 당연하다는 얘기다. 차국헌 서울대 공대 학장은 "실리콘밸리 신입 엔지니어의 연봉은 10만달러 이상으로 한국 대기업의 두배가 넘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시스템적인 문제점도 많다. 미국 정부는 매년 한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의 전문직 인력의 신청을 받아 추첨으로 8만5000개의 H-1B 취업 비자를 내주고 있는데 이 혜택의 주요 타깃은 이공계 인력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국방부가 병역자원 부족을 이유로 이공계대학원생 대상 병역대체 복무제도인 전문연제도를 2019년부터 폐지하겠다고 공언한 이후 이공계 인재 '엑소더스'를 되레 자초했다는 비판이 많다.
서울대 공대 관계자는 "국내 우수인재들이 해외대학과 기업들의 스카우트 제안을 마다하고 국내 대학원에 진학한 데는 국내 대학 진학시에 한해 병역대체복무가 가능했던 점이 컸다"며 ""정부가 '보류'라는 입장을 취했지만 불안해진 학생들이 아예 해외로 눈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인재는 속속 빠져나가는 상황인데 지난 10년간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정원은 오히려 감소했다. 컴퓨터공학부 정원은 학
[황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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