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대법원장(69·사법연수원 2기)이 지난 6년간 이끌어온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절차적 정의와 사회 안정을 중시하면서 사회상의 변화를 반영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는 역대 최다인 116건의 전합 판결에서 객관적으로 나타났다. 오는 22일 양 대법원장 퇴임을 앞두고 주요 전합 사건의 의미와 영향을 되짚어 봤다.
무엇보다 과세관청이 관례적으로 불시에 기업 등을 상대로 강행하던 특별세무조사 등의 절차적 흠결을 지적하고 납세자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판례를 다수 확립한 점이 성과로 꼽힌다. 지난 2012년 10월 18일 전합은 박모씨 등이 서울강남세무서장을 상대로 낸 증여세 부과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납세고지서에 가산세의 종류와 산출 근거를 기재하지 않은 세금 부과처분은 위법하다"고 확인했다. 그 이전까지 과세당국이 가산세 합계액만 고지서에 기재하던 관행에 대해 "행정편의적 발상은 법치의 광장에서 용인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올해 4월 20일 회사 주식 90%(약 180억원)를 본인이 세운 장학재단에 기부했다가 140억원의 증여세를 부과 받은 황필상씨(70)의 상고심에서 세무당국의 처분이 적법하다고 판단한 원심을 파기환송한 사건도 주목을 받았다. 큰 규모의 주식을 공익법인에 기부했을 때 단순히 과거 최대주주였다는 이유로 이를 회사를 지배하는 수단으로 악용하는 것으로 낙인찍는 것에 대한 문제를 지적했다. 과중한 세금부담이 '착한기부'를 가로막아온 악습에 숨통을 틔어줬고, 이후 일부 법개정으로도 이어졌다.
노동 분야에서는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이 엿보였다. 2013년 12월 18일 갑을오토텍 재직·퇴직자들이 청구한 임금·퇴직금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하면서도 경영상의 어려움을 맞거나 기업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울 때에는 노동자 측의 통상임금 산입 주장을 신의성실의 원칙으로 배척할 수 있도록 했다. 최근 기아자동차 통상임금 1심 선고 등 '신의칙'에 대한 법리 논쟁은 여전히 진행중이라 새 대법원장 체제에서 이 판례가 어떻게 결론날지 주목된다.
또 2015년 6월 25일 국내 거주 이주노동자를 노동조합법 상 근로자의 범위에 포함된다고 보고 이들의 노조 설립을 허용했다. 이는 소송을 제기한지 10년만이자 2007년 항소심 판결 뒤 8년 4개월만에 나온 판례였다. 국내 노동계가 산업별노조 중심인 상황에서 산별노조 지부·지회가 독립적인 단체교섭권 등을 보유하고 있으면 조직원 및 재산을 그대로 유지한 체 기업별 노조로 변경 가능하도록 한 판례도 관심을 끌었다.
'변화된 가족의 현실'을 반영한 판례도 있었다. 정상적으로 가정을 꾸려가고 있는 부부간에도 폭행,협박 등으로 성관계를 한 남편에게 강간죄를 처음 인정했다. 또 유책배우자가 이혼청구 할 수 없다는 기존 판례는 유지하면서도 혼인 파탄의 책임을 상쇄할 정도로 상대 배우자나 자녀에 대한 보호와 배려가 이뤄졌다면 이혼 청구가 가능하도록 한 판례도 있었다.
이처럼 양 대법원장 재임기의 전합 116건은 전임 이용훈 전 대법원장(95건) 때보다 21건 증가했고, 전전임 최종영 전 대법원장(63건) 때보다는 두 배 넘게 급증했다. 2015년 7월부터 대법원장과 대법원의 3개 소부 소속 대법관 1명씩 총 4인으로 구성된 '전원합의체 소위원회'를 신설해 운영한 게 전합 활성화에 기여했다는 평이다.
이찬희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52·30기)은 "전합은 누구나 본인 사건을 다수의 판사들이 깊이 있게 심리해주길 바라는 재판 당사자들의 공통된 희망이 담긴 형태"라고 긍정적으로 평했다.
사법행정은 공과가 엇갈린다. 대표적으로 '전관예우' 근절을 위해 '평생법관제'를 정착시킨 점은 좋은 평가를 받는다. 법원장 등 고위 법관들이 퇴임하지 않고 재판부로 복귀하는 경향이 두드러져 하급심 강화에도 기여했다. 다만 2016년 19대 국회에서 '상고법원' 도입이 무산된 것은 큰 아쉬움으로 남았다. 상고법원을 통해 연간 최대 4만4000여건에 이르는 대법원 사건 적체를 해결하고 전원합의체를 강화하고자 했지만 어려워졌다. 상고법원 도입이 무산된 이후 수십년간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돼 오던 인사적체, 사무분담에 대한 불만이 노골적으로 나타났
[전지성 기자 / 채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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