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반포 571돌을 보름여 앞둔 지난달말 매일경제 편집국 사회부 앞으로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편지를 보낸 주인공은 이수열 솔애울 국어순화 연구소장(90)이다. 아흔이라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20여년간 기자들과 장관·교수님들의 한글 선생을 자처해 온 한글 사랑꾼이다. 솔애울은 그가 태어난 파주시 '송라동(松羅洞)'의 순우리말이다. 이 연구소장은 우리말 어법에 어긋난다고 생각하는 구절만 보면 빨간펜으로 북북 그어 회초리를 든다.
이날 편지에는 사회부장이 데스크컬럼에서 바로 앞 문장에 나온 표현을 '이 같은'으로 표현한 게 잘못이라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이 소장은 편지에서 "'같은'은 부사격 조사 '같이'의 관형(수식)형으로 명사에 붙여쓰는 말"이라며 "'이러하다'의 관형형인 '이러한'으로 바꿔쓰는 게 옳다"고 친절하게 설명했다. 47년간 초·중·고 교사로 근무하고 정년퇴임한 직후인 지난 1993년부터 시작한 일은 어느덧 20년을 훌쩍 넘겼다. 그간 이 연구소장이 보낸 편지만 해도 수 만 통에 달한다.
지난달 28일 편지를 받아본후 본지 기자가 서울 은평구 소재 이 소장 자택을 방문해 한수 가르침을 청했다. 그의 책상 한편에는 빨간줄을 곳곳에 그은 강경화 외교부장관과 송영무 국방부 장관의 신문 기고 컬럼이 놓여 있었다.
기자가 지난 8월29일자에 본지 사회면 머릿기사로 쓴 원고지 10매 분량의 '국립묘지 3년 내 꽉 차…묻힐곳 없는 국가유공자 42만명' 기사를 건네자 이 연구소장은 두꺼운 돋보기 안경을 다시 고쳐 썼다. 이 연구소장이 해당 기사에서 뜯어 고친 잘못된 우리말 표현만 줄잡아 30여 곳에 달했다. '고갈될(고갈할)', '~되는 것이다(된다)', '돌리고 있는(돌리는)', '신설이 계획된(신설을 계획한)', '국비가 투입돼(국비를 투입해)', '신속 추진해(신속히 추진해)', '취급하는(여기는)' 등이다. 기자가 사용한 피동형 문장와 영어식, 일본어식 표현이 그의 빨간 펜을 피해가지 못했다.
기자가 "언어라는게 원래 시대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하는 데 너무 문법과 형식에 얽매이는 것 아니냐"는 당돌한 질문을 던졌다. 이 연구소장은 "우리 말은 '소금'처럼 너무 흔해서 사라지기 전에는 국민들이 제 가치를 모른다"고 말했다. 소금이 짠 맛을 내야 소금인 것처럼 우리말도 깐깐하고 번거롭더라도 제대로 지키고 살아야 국어의 아름다움을 지켜낼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이 소장은 광복후 70년을 훌쩍 넘겼는데도 우리말 곳곳에 여전히 남아있는 일본어식 표현이 무엇보다 아쉽다고 했다. '입장'이나 '애매하다' 등 우리가 무심결에 사용하는 단어들이 일본말 잔재라는 것이다. 이 연구소장은 "입장은 우리말 '처지'라는 뜻으로 쓰이는 순수 일본어를 한자로 표현한 것"이라며 "그런데 우리는 일본인들조차 전혀쓰지 않는 별의 별 뜻으로 이 단어를 곳곳에서 쓰고 있다"고 한탄했다.
경기도 파주에서 나무꾼의 아들로 태어난 이 소장은 가난 탓에 학업을 제대로 마치지 못했다.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교원자격시험에 합격한 뒤 교편을 잡았지만 일제 치하에서 아이들에게 우리말을 제대로 가르칠 수 없었다. 학창시절 일본인 교장보다 더 지독하게 우리말 교육을 탄압했던 조선인 교장에 대한 아픈 기억도 우리말 사랑의 밑거름이 됐다. 47년간 초·중·고교사로 재직하면서 이 소장은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 선생의 '우리말본' 등을 스승삼아 우리말의 바른 어법을 깊이 있게 공부했다. 퇴직 후 집필 활동에 매진하면서 지은 문법책만 5권, 지난 1993년 펴낸 '우리말 우리글 바로알고 바로쓰기'는 이 분야에서 손꼽히는 책이다. 일본식 표현으로 가득한 헌법을 우리말로 고쳐 쓴 '대한민국 헌법'을 출간하기도 했다.
우리말 사랑에 대한 공로로 이 연구소장은 지난 2004년 문화광광부와 한글학회가 선정하는 첫번째 '우리말·글 지키미'로 위촉되기도 했다.
이 소장은 "젊은시절 중등교
[유준호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