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 유튜브 캡처] |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마타하리로 불리고 있는 그의 본명은 마가레타 거트루드 젤르다. 1876년 네덜란드에서 투자자 아버지와 전업주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젤르는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고 부도 위기에 몰리고부터 생활은 급격하게 어려워졌다. 답답한 삶을 돌파하고자 했던 젤르는 네덜란드 대위 맥 레오드가 아내감을 찾는다는 한 신문 광고를 보고 그와 교제를 시작했다.
뛰어난 미모와 몸매로 결혼까지 성공했지만 젤르의 수난은 끝나지 않았다. 결혼 생활 동안 알콜 중독에 빠진 레오드에게 지속적으로 폭행을 당한 것이다.
남편의 잦은 외도와 폭행으로 고통받던 젤르는 이혼을 결심했고 1903년 새 출발을 위해 무일푼으로 프랑스로 떠났다. 프랑스 파리에 도착한 그는 서커스단 일원부터 화가 모델까지 닥치는 대로 일을 했지만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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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생활 동안 극심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자바섬 전통춤을 배웠던 그는 경험을 살려 파리에서 무희로 활동했다. 당시 그는 이국적인 매력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인도네시아어로 '여명의 눈동자'라는 뜻의 마타하리를 가명으로 사용했다.
서양인들에게는 낯선 동양 춤의 매력을 전파한 마타하리는 물랭루주 극장에서 매혹적인 공연을 선보이며 파리의 가장 인기 있는 무희로 거듭났다. 특히 유럽 사교계 유력 인사들 사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그는 유럽 전역을 전전하며 부와 권력을 가진 상류층과 접촉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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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의 첩보 활동은 1917년 1월 양국에 발각되면서 끝이 났고 같은 해 10월 15일 프랑스 뱅센에서 처형당했다.
사형 집행이 되는 순간까지도 마타하리는 팜므파탈의 면모를 보였다. 사형 집행
[디지털뉴스국 이유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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