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 도중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고 투병하다 숨진 고(故) 백남기씨 사건과 관련해 지휘·감독을 소흘히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구은수 전 서울지방경찰청장(59)이 첫 재판에서 본인은 당시 시위의 총괄 책임자가 아니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부장판사 김상동) 심리로 구 전 청장, 신모 전 서울지방경찰청 4기동단장(총경) 등 4인의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등 1회 공판준비기일이 열렸다. 공판준비기일은 피고인이 출석할 의무가 없지만 이날 구 전 청장만 회색 정장을 입고 홀로 법정에 나왔다.
구 전 청장의 변호인은 "집회시위 현장의 진압 및 관리 총괄책임자는 서울지방경찰청 차장과 기동본부장"이라며 "책임 단계를 두 단계 건너뛰어 청장에게 바로 책임을 묻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주장했다.
구 전 청장도 "사고가 발생한 현장은 서울 종로구청이지만 사고센터에서 CCTV로 상황을 감별할 수 있는 곳은 코리아나호텔 세종대로 쪽"이었다며 "같은 시간대에 발생한 다른 상황들을 살펴봐야했다"고 진술했다. 당시 여러 장소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집회가 열렸기 때문에 백씨가 있던 종로구청 주변 상황은 챙겨보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또 구 전 청장 측은 살수 방향이나 세기를 조작할 때 보는 살수차 내부 모니터의 해상도가 낮아 백씨의 존재를 확인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당시 살수차 조작 요원들이 내부 화면을 통해 물살이 나가는데도 백씨가 밧줄로 경찰차를 잡아 당기는 걸 볼 수 있었는지가 중요 쟁점"이라며 "해당 모니터 영상을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구 전 청장 등은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 집회 진압과정에서 살수차로 시위 참가자인 백씨에게 직사 방식으로 물줄기를 쏴 두개골 골절 등으로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한편 구 전 청장은 이날 금융다단계 업체로부터 뒷돈을 받고 경찰관 인사에 개입한 혐의 등으로 추가 기소됐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신자용)는 IDS홀딩스 회장 유모씨(구속기소) 등으로부터 3000만원의 뇌물을 받고 부당한 인사조치를 지시한 혐의(수뢰후 부정처사 및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 등으로 구 전 청장을 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구 전 청장은 IDS홀딩스에 대한 수사와 관련해 유씨로부터 돈을 받고 이 회사 대표 김모씨와 친분이 있는 경찰관을 승진·전보인사 조치해 수사에 영향을 미친 혐의를 받고 있다. 구 전 청장은 경찰관 2명을 경위로 특별승진시켰고, 또 김씨와 유착관계를 맺은 경찰관을 IDS홀딩스 사건 관할 경찰서로 전보 조치했다. 해당 경찰
검찰은 "경찰이 사실상 김씨로부터 수사지휘를 받아 수사를 진행해 피고소인을 구속하는 등 청부수사를 하고 IDS홀딩스 등 유사수신 업체에 대한 단속 정보도 누설했다"고 밝혔다.
[채종원 기자 / 부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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