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마음에 책을 폈지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안 돼 어머니를 도와 자원봉사에 나섰어요. 이제 대피소를 나가 아버지 농장에 가서 남은 기간 동안 공부에 집중해야 해요"
지진 피해를 입고 대피소로 향한 포항 지역 수험생들이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큰 시험을 앞두고 몸 상태를 최고조로 끌어올려야 할 시기에 여진 공포와 추위, 혼잡함이 가득한 대피소 생활이 이어지자 일부 학생들은 남은 공부를 포기하고 자원봉사에 나서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지진뿐만 아니라 수능에 대한 불안감까지 겹친 포항 지역 수능생들에게 남은 5일은 고통의 연속이다.
17일 오전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실내체육관은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700여명 이상이 촘촘히 모여있던 지난 밤 보다 더 한기가 돌았다. 지진 피해가 상대적으로 덜한 주민들이 대피소를 떠나 자신의 집으로 향한데다 일부 직장인들이 출근을 위해 대피소를 떠난 탓이다.
특히 혼잡함 속에서도 수능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꿋꿋이 책을 보던 학생들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불안감을 떨쳐내기 위해 일부러 밝고 큰 목소리를 내는 일부 주민들의 대화와 곳곳에서 들리는 한숨소리, 아기 울음소리가 혼재된 대피소 안에서 '쪽공부'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전날 대피소에서 공부 대신 자원봉사를 도왔던 수험생 김모 양(18·여)은 "계속되는 여진과 추위, 혼잡함 때문에 책을 본다는 것이 불가능했다"며 "독서실로 이동한 친구들도 있고 일부는 대피소에서 나와 부모님 차에서 히터를 들고 공부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대피소 내에선 전반적으로 서로 '조금만 참자'며 격려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지만 수험생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대피소로 온 또 다른 수험생 박모 양(18·여)은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와 발 구르는 소리만 들어도 지진 생각이 나서 가슴이 뛴다"며 "남은 기간 동안 더 노력할 친구들을 생각하면 우리 입장에선 마냥 피해 복구나 지진이 잦아들기만을 기다리며 앉아있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박양은 이어 "사방에 카메라가 깔려있어 더 예민해지고 있다"며 "마치 지진이 우리 때문인 것 처럼 비난하는 댓글들이 많아 상처입었다"고 토로했다.
공부할 곳이 없어 휴교선언을 한 학교에 등교해 공부하는 학생들도 있다. 지진 피해를 입지 않은 포항 영일고등학교엔 휴교선언을 한 이날도 소수의 학생이 등교해 수능 공부를 했다. 정재헌 교감은 "비교적 피해지역과 멀고 학교에도 피해가 없어 나와서 공부하겠다는 학생들을 받고 있다"고 답했다. 영일고 2학년 학생들은 이날 흥해실내체육관 대피소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하기도 했다
지진 후유증은 직접 공포를 경험했던 이 지역 수험생들에게 또 하나의 우려 요인이다. 대피소 내 무료 진료소를 운영 중인 한 의료진은 "지진 후 두통을 느끼거나 불면증을 호소하는 피해자들이 많다"며 "트라우마가 쉽게 가시지 않음은 물론 사람들이 모여 있어 감기 환자들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고사장 변경 문제도 포항지역 학생들에게는 큰 심적 부담이다. 지난 16일 교육당국이 포항지역 고3 수험생 4300여명을 대상으로 카카오톡과 문자메시지를 통해 시험장소 이전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10명 중 9명이 포항을 선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교육당국이 실시하고 있는 포항지역 고사장에 대한 안전점검 결과에 따라 고사장 변동도 가능한 상황이다. 자칫 낯선 환경에서 시험을 준비해야 하는 부담감까지 떠안은 셈이다.
지진 피해가 집중된 포항과 달리 다른 지역에서는 수험생들의 면학 분위기가 조성됐다. 이날 오전 10시 서울 용산구 용산고등학교 3학년 교실은 'D-1’이 'D-6'으로만 바뀐 채 상당수의 학생들이 교실에 앉아 조용히 자습을 했다. 서울 종로구 경복고 3학년 교실도 분위기는 비슷했다. 전대미문의 자연재해발(發) 수능연기 사실에 흥분했던 학생들은 하루 만에 정상으로 돌아왔다. 쉬는 시간 웃고 떠들며 장난치던 모습은 자율학습 시작과 함께 바뀌었고, 학생들은 크게 동요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경복고 3학년 이승준 군은 "
[포항 = 박재영 기자 / 김유신 기자 / 서울 = 임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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