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에서 기출문제를 뜻하는 이른바 '족보'를 둘러싼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지난 17일 S대 대나무숲 페이스북 페이지에 "XX교수님, 조교님. 부끄럽지도 않으십니까. 어떻게 그렇게 족보에서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그대로 내십니까?"라며 "떳떳하게 최선을 다한 사람들이 왜 피해를 봐야 하냐"며 억울함을 토로하는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손에 족보 한 장 들고 시험을 치러 가는 학우를 보며 눈살이 찌푸려지긴 했으나 직접 공부한 사람만큼 성적을 잘 받겠나 싶어 화가 나진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예 (시험문제가) 족보와 똑같을 줄 몰라서 화가 난다"며 자신의 심경을 토로했다.
익명의 학생은 댓글로 "모 전공 교수는 족보 얻는 것도 능력이라고 당당하게 수업시간에 말했다"라며 "문제가 족보와 똑같으면 학생들은 추천 강의라고 추천하는데 질 낮은 수업들이 넘쳐난다"고 지적했다.
게시글에는 족보 때문에 오히려 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피해를 본다며 공감하는 반응이 많았다.
'족보'란 대학가에서 해당 과목의 기출문제와 요약본을 부르는 명칭이다. 수강신청 기간에 "시험 문제가 족보랑 똑같다"는 강의평이 달린 수업은 이른바 '꿀강의'라고 불려 학생들에게 인기가 있다. 시험기간에는 아는 선후배를 총동원해 '족보 구하기 전쟁'이 벌어기도 한다. 대학생들에게 '족보'는 노력대비 성적을 잘 받을 수 있는 일종의 '치트키'인 셈이다.
과거 족보는 선배가 후배들에게 알음알음 물려주곤 했다. 하지만 최근 학점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족보는 '공유'의 대상이 아닌 '거래'의 대상이 됐다. 대학교 온라인커뮤니티에서 한 과목당 족보 가격이 3만~5만원에 거래되고 족보를 알선해주는 전문업체가 등장하기도 했다. 시험을 급하게 준비하기 위해 족보를 샀던 대학생 이 모씨(23)는 "족보를 사면서도 '이게 진짜 대학에서 배우는 공부가 맞나'라는 생각에 회의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족보를 사고파는 학생들을 비난하기보다 족보가 통용되도록 매년 시험을 똑같이 내는 교수님이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김 모씨(26)는 "족보가 유용하다는 것 자체가 시험 문제가 바뀌지 않고 출제된다는 의미"라며 "열심히 공부한 학생은 투자한 노력에 비해 불공평한 대우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불만을 보였다. 대학생 이 모씨(24)도 "족보를 구하는 것 자체는 개인의 능력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매년 시험문제마저 똑같이 출제되는 수업을 듣다 보면 비싼 등록금이 아까울 지경"이라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일각에는 스펙관리와 학점관리에 치여 바쁜 대학생들에게 족보는 필수적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학생 노 모씨(24)는 "방대한 양을 공부해야 할 때 족보는 공부 방향을 잡는 데 도움이 된다"며 "학생들끼리 족보
전 모씨(21)도 "시험기간에도 아르바이트나 대외활동을 병행해야 하고 시험공부에만 매진할 수 없는 게 대학생의 현실이라 이럴 때 족보가 실질적으로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디지털뉴스국 윤해리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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