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새해를 앞두고 '서민 부담 절감'을 강조하며 출범 후 첫 특별사면을 실시했다. 그러나 사면 대상에 기업인들은 한 명도 포함되지 않은 것을 놓고 “국가경제 살리기 차원에서 아쉽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65)은 29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특별사면을 발표한 뒤 "공직자의 부패범죄, 경제인의 사익추구 범죄를 철저히 배제해 법질서 확립 의지를 재확인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는 이번 특별사면을 통해 다가오는 한해에 국민 통합과 민생 안정을 위한 계기가 마련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취임 전부터 기업인 사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분명히 밝혀온 탓에 재계에선 이번 특별사면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경제인이 한 명도 사면대상에 포함되지 않자 일각에선 "국내 경제를 살리기 위해 이미 형을 마쳤거나 집행유예 중인 기업인의 복권을 고려할 법 한데도 그러지 않아 아쉽다"는 얘기가 나온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2014년 2월에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받고 풀려난 후 경영에 복귀했지만 사면복권이 안돼 계열사 등기이사 등을 맡지 못하고 있다. 2019년에 집행유예 기간이 끝나도 관련 법규 등에 의해 1~2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은 지난 10월 형기가 만료됐지만 향후 5년간 등기이사를 맡을 수 없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해서 엄하게 처벌한 것은 당연하지만 형평성에 맞게 사면을 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도 "총수들이 경영 전면에 복귀하지 못한 상황에서 공격적인 투자나 채용이 이뤄지기 어려운건 사실"이라면서 "국민경제 차원에서 일부 재계총수에 대한 특별사면이 필요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대신 이번 사면의 성격이 생계형 사범 등을 중심으로 하는 '민생특사'라는 점을 강조했다. 박 장관은 "경제인·공직자의 부패범죄, 각종 강력범죄를 사면 대상에서 배제하고 이주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를 포함한 일반 형사범 다수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죄질이 상대적으로 경미한 재산범죄를 중심으로 서민들이 조속히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재기의 기회를 제공했다"고 말했다.
박 장관은 또 "인도주의적 배려 차원에서 고령자·중증질환자·유아 대동 수형자·생계형 절도사범 등 어려운 여건의 수형자를 적극 발굴해 사면대상에 포함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소액의 옷가지와 먹을거리를 훔치다 적발된 생계형 절도범 등을 사면하고, 생계형 위반행위를 한 영세 어업인들이 어업활동을 즉시 재개할 수 있도록 어업면허·허가 제재를 감면한다.
집회시위 사범 중에서는 2009년 용산참사 관련자들이 적용됐다. 박 장관은 당시 점거농성을 하다가 사법처리된 철거민 25명에 대해 각종 법률상 제한을 해소하기로 하고 "삶의 터전을 잃은 철거민들을 배려함으로써 사회적 갈등 치유 및 국민 통합의 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이들은 용산구 남일당 빌딩 세입자 또는 철거민 단체 회원으로 2009년 1월 19일 빌딩에 설치한 망루에서 보상을 요구하며 농성하다가 불을 내 경찰 1명을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돼 실형을 선고받았다. 법무부는 용산참사 외에도 제주해군기지, 경남 밀양 송전탑, 사드(THAAD), 세월호 참사 등 5대 사건 관련 집회를 특정해 참가자에 대한 사면을 검토해왔다.
한편 정부는 이적표현물로 판단해 국가가 몰수·보관해 온 신학철 화백의 그림 '모내기'를 국립현대미술관에 위탁 관리하기로 했다. 박 장관은 이날 "보관장소와 방법이 적절치 않아 현재 작품이 일부 훼손된 상태로 적절한 처분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관련 규정에 따라 검찰에 국립현대미술관 위탁관리 등 처분 방안을 마련할 것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그림을 보관 중인 서울중앙지검은 문체부 산하 정부 미술은행에
검찰은 1989년 이 작품이 이적표현물이라며 압류한 뒤 신 화백을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했다. 1999년 파기환송심 끝에 대법원에서 징역 10개월의 선고유예와 그림 몰수 선고가 확정됐다.
[이현정 기자 / 황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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