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년전 박정희 정권 시절 정부를 비판했다가 '대통령 긴급조치 9호'(이하 긴급조치) 위반으로 실형을 선고받고 억울하게 생을 마감한 고인 3명이 뒤늦게나마 범죄 혐의를 벗게 됐다.
대전지법 제12형사부(재판장 박창제)는 대통령긴급조치위반죄로 실형을 선고받았던 A씨 등 3명에 대한 재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고 22일 밝혔다.
A씨는 1975년 4월 초 대전교도소 인쇄공장에서 기결수 등에게 "대한민국 국민은 하루 벌어 하루 먹기도 힘들다. 그 이유는 정부에서 전부 착취하기 때문"이라고 말했고, 5월 30일 오후 2시께는 "박정희 대통령이 그만두고 새 영도자가 나와야만 국민이 살기가 나을 것"이라며 수차례 정부를 비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당시 유죄가 인정돼 징역 1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았다. B씨는 같은 해 9월 29일 오전 8시 30분께 노인회관 앞길에서 "이북 청년들을 동원해 청와대 습격을 하려고 했던 사람이다. 돈 보따리를 싸다가 박정희를 줘서 살게 됐다"는 등 발언을 해 기소됐고, 법원에서 징역 1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했다. C씨는 1978년 9월 16일 서울 동대문구 주거지에서 "유신헌법으로 인해 반공교육에 차질 있다"는 제목의 서신을 청와대로 보낸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2년 6월, 자격정지 2년을 선고받았다.
긴급조치 9호는 유신헌법 철폐와 정권퇴진을 요구하는 민주화운동이 거세지자 이를 탄압하려고 1975년 5월 13일 선포됐다. 유언비어의 날조·유포, 사실의 왜곡·전파행위 등을 금지하고, 집회·시위 또는 신문·방송·통신에 의해 헌법을 부정하거나 폐지를 청원·선포하는 행위 등을 금지했다. 이런 명령이나 조치는 사법적 심사 대상이 되지 않고, 위반자는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3년 4월 18일 "긴급조치 9호는 그 발동 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목적상 한계를 벗어나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나치게 제한함으로써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라며 "긴급조치 9호가 해제 내지 실효되기 이전부터 유신헌법에 위반돼 위헌·무효이고, 현행 헌법에 비춰 보더라도 위헌·무효"라고
[조한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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