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77)이 22일 110억원대 뇌물 수수, 340억원대 비자금 조성 등 혐의에 대해 구속영장 서류심사를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박범석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 전 대통령이 법정 불출석 의사를 밝히자, 이날 밤 늦게까지 검찰이 제출한 수사기록 등 서류심사만으로 구속영장을 발부 여부를 판단했다.
◆ 숨죽인 논현동 자택
이날 오전 서울중앙지법은 "피의자 본인의 심문 포기 의사가 분명한 이상 심문 절차를 거치지 않고 구속영장 발부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전 대통령이 출석하지 않은 채 검사와 변호인만 참석해 심문을 하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보고 아예 심문 절차를 열지 않기로 했다. 애초 오전 10시 30분 이 전 대통령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이 열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법정에 나오지 않겠다는 이 전 대통령과 달리 전날 변호인단이 "영장심사에 참석하겠다"고 밝히면서 혼선이 빚어져 무산됐다.
이 전 대통령은 이날 내내 서울 논현동 자택에서 두문불출하며 법원의 판단을 기다렸다. 지난 14일 검찰 소환 때와 마찬가지로 자택 주변에는 경찰 병력이 배치됐다. 시민 한 사람이 이 전 대통령의 구속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했을 뿐 이 밖의 시위대나 지지자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이날 심문 절차는 생략됐지만 수사기록이 방대하고 쟁점이 많아 서류심사에만 오랜 시간이 걸렸다. 검찰이 제출한 구속영장 청구서의 분량은 범죄사실과 일람표를 포함해 A4용지 207쪽에 달한다. 또 구속을 필요로 하는 사유를 설명한 검찰의 의견서는 1000쪽이 넘는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이날 오후 기자간담회에서 "서면심사에서도 추가 의견서와 추가 증거자료를 제출하는 방법으로 끝까지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금까지 법원에 제출한 서류 분량은 총 8만 쪽, 157권에 달한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제출한 증거 기록 분량이 많아 시간이 상당히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추가 수사 계획에 대해 "영장 발부 여부와 관계없이 수사가 끝나지 않은 단계라는 건 명백하다"며 "청구한 영장을 발부 결정이 나도록 최선을 다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1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심사에 직접 출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영장심사는 역대 최장시간인 긴 8시간 40분 동안 진행됐다. 그는 직접 불구속 수사의 필요성을 호소했다고 한다.
박 전 대통령은 오후 7시 11분 심리를 마친 뒤 검찰이 준비한 차를 타고 서울중앙지검 청사로 이동해 자신이 조사를 받았던 10층의 별도 조사실 및 휴게실에서 대기했다. 그는 이곳에서 이튿날인 새벽 3시 3분 구속영장 발부 결정이 나오기까지 8시간 가까이 머물렀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오전 4시 29분께 수사관들과 함께 검찰 승용차를 타고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로 향했다.
◆ 영장 범죄 소명 관건
이 전 대통령의 구속 여부를 결정하는 데는 범죄가 얼만큼 소명됐는지가 관건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형사소송법은 피의자가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타당한) 이유가 있고 ▲일정한 주거가 없는 때 ▲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는 때 ▲ 도망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을 때 등 세 가지 중 하나에 해당하는 사유가 있을 때 구속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검찰은 지난 19일 이 전 대통령의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110억원대 뇌물과 총 350억원대 비자금 등 12개 안팎의 혐의를 적시했다. 검찰은 측근 등 관련자 진술과 영포빌딩에서 확보한 문서 등 증거물에 비춰 혐의가 충분히 인정된다고 주장한다.
반면 이 전 대통령 측은 혐의를 대부분 부인하고, 이같은 내용을 담은 소명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또 증거인멸이나 도주 우려 등 구속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담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핵심 쟁점은 '이 전 대통령이 뇌물수수 사실을 인식했는지'와 '다스 실소유주로 볼 수 있는지' 여부인 만큼 이에 대한 법원 판단이 희비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
이 전 대통령은 국가정보원의 특수활동비 상납을 비롯해 삼성의 다스 소송비 대납, 민간 부문 뇌물 수수 등 혐의를 받고 있다. 뇌물 혐의액만 110억원에 달한다. 현행법상 뇌물 액수가 1억원이 넘으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적용을 받아 10년 이상의 무거운 형을 받게 된다. 또 다스 실소유주 의혹은 삼성의 소송비 대납이나 다스 경영비리 등 이 전 대통령의 혐의사실을 구성하는 전제조건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 구속시 동부구치소 유력
이날 법무부와 검찰에 따르면 교정 당국은 이 전 대통령의 구속영장이 발부될 경우에 대비해 서울동부구치소를 수용 장소로 잠정적으로 정하고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앞서 서울중앙지검은 이 전 대통령의 구속영장 청구서에서 구속 장소를 서울구치소 또는 서울동부구치소로 하겠다고 밝혔다.
중앙지검이 구속하는 주요 피의자는 사건 관할과 조사 편의 등을 고려해 일반적으로 경기도 의왕시에 위치한 서울구치소에 수용된다. 이 곳에는 국정농단 사건으로 기소된 박 전 대통령이 이미 수감돼 있는데다 김백준 전 총무기획관 등 이 전 대통령과 공범 관계인 피의자들도 수용돼 있다. 이 때문에 교정 당국은 이 전 대통령의 수용 장소로 송파구 문정동에 위치한 동부구치소를 낙점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정부 '비선 실세' 최순실씨,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이 수감돼있다.
이 전 대통령에게 전직 대통령 예
이 전 대통령의 구속영장이 기각되면 그는 자유로운 상태에서 변호인·참모진과 의견을 교환하며 검찰의 향후 수사와 재판에 대비할 수 있다.
[이현정 기자 / 송광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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