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와 부모에게 필요한 물품은 물론, 이불과 매트리스도 담겨 아이 침대로도 쓸 수 있는 모두가 바라는 선물과도 같은 존재죠.
반면, 우리에겐 그 누구도 원치 않는 베이비박스가 있습니다.
'사정상 키울 수 없다면 이곳에 넣어주십시오.'
여기 놓인 아이들은 시설이나 보호기관에 보내져 성인이 될 때까지 말 그대로, 고아로 자랍니다.
예전엔 국내나 해외로 입양돼 새로운 가정에서 자라기도 했지만, 지금은 아예 입양 대상이 안 되거든요.
2012년 친부모가 정식으로 출생신고를 한 아이들만 입양이 되도록 입양특례법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입양특례법은 입양아들의 권리를 보호하자는 좋은 뜻으로 제정됐습니다만, 임신 사실부터 숨겨야 하는 미혼모들이 당당하게 출생신고를 할 수 있을 리 만무.
결과적으로 입양보단 베이비박스에 맡겨지는 아이들이 더 많아진 겁니다.
한편으론, 베이비박스에 놓인 걸 그나마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쓰레기 봉지에 아이를 낳아 버린 10대 엄마', '모텔에 신생아 시신을 방치한 20대 엄마', 대부분 임신부터 출산·양육까지, 오롯이 혼자 떠안을 수밖에 없는 미혼모들은 이런 범죄 외엔 선택할 방법이 별로 없죠.
미국이나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선 친부모가 가명으로 아이의 출생신고를 할 수 있는 '비밀 출산법'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보면 입양을 용이하게 하는 법 같지만, 그 이면엔 부득이한 사정으로 친부모가 아이를 키울 수 없을 때 국가가, 사회가, 아이를 키울 수 있게 하는 겁니다.
아이와 부모, 어느 한쪽이 아닌 둘 다 보호하기 위한 거죠.
책임질 수 없는 아이를 낳지 않게 하는 게 최선이겠지만, 일단 어쩔 수 없이 낳은 아이라면 현실을 인정하고 아이와 부모를 보듬어 줄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게 국가가 할 일입니다.
오늘은 입양의 날이자 싱글맘의 날입니다.
아이도, 부모도 행복하지 않는 날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요.
출산과 양육이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듯, 이제라도 사회의 법과 제도가 현실에 맞게 제대로 좀 정비됐으면 좋겠습니다.
서로 싸우지만 말고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