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를 처벌하는 대신 다양한 제도 도입, 예외 허용 사유 확대 등으로 임신부가 출산 여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청구인 대리인)
"낙태죄가 폐지된다면 태아 생명권에 대한 아무런 보호조치가 없어져 또 다른 위헌적인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법무부장관 대리인)
헌법재판소는 24일 대심판정에서 낙태시술을 한 혐의로 기소된 의사 A씨가 낙태를 처벌하도록 규정한 형법 제269조1항과 제270조 1항에 대해 청구한 헌법소원 심판사건의 공개변론을 진행했다. 심판대상 조항은 임신부가 약물 등 방법으로 낙태한 경우와 의사 등이 낙태 시술을 한 경우 형사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헌재는 2012년 8월 형법 제269조 1항 등에 대해 재판관 4대 4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린바 있다.
6년 만에 공개변론이 진행된 이 사건의 쟁점은 태아 생명권 인정 여부, 낙태 처벌이 임신부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지 여부다. 주심인 조용호 재판관은 청구인 및 법무부장관 대리인에게 낙태죄 폐지 찬반 측에서 주장하는 여러 근거를 바탕으로 양측의 의견을 물었다.
조 재판관은 낙태를 허용할 경우 생명경시 풍조가 심화될 가능성을 물었다. 이에 청구인 측은 "독일·스위스 등 낙태가 허용된 나라에서 오히려 더 낙태율이 낮게 나온다"고 주장했다.
또 조 재판관은 "임신 중인 태아와 출생한 아이의 근본적 차이가 있는지 의문이다"고 물었다. 청구인 측은 "태아는 그 생존과 성장을 전적으로 모체(母體)에 의존해야 하는 불완전한 생명이라 생명권의 주체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착상단계부터 생명권 주체로 보는 독일도 12주 이내 낙태를 허용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조 재판관은 "임신 12주 태아와 13주 태아간 생명의 보호 정도를 달리해야 할 근본적 차이가 있는지"를 되물었다. 청구인 측은 "임신 말기가 되면 여성 자궁이 (최초보다) 1000배 늘어나는 등 태아 상태는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임신부에게 부담이 적은 초기에 낙태를 허용하는 게 자기 결정권과 태아 생명보호에도 부합한다"고 답변했다.
조 재판관은 법무부 측에 "사회·경제적 사유 등으로 원치 않는 임신에 대해 낙태를 허용하지 않고 형사 처벌하는 것은 해당 여성에게 너무 가혹한 처사가 될 수 있다"고 물었다. 이에 법무부 대리인은 "경제적 사유까지 낙태를 허용할 것인지 여부는 낙태 제도의 매우 근본적 문제로 향후 입법적 해결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법무부의 이같은 입장에 대해 여성가족부는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여가부는 지난 3월 30일 헌재에 낙태죄 폐지 의견서를 제출했다. 연간 낙태시술이 약 17만건 이뤄지지만 실제 기소되는 경우는 10여건에 불과해 사문화된 규정이라는 취지다. 또 낙태 처벌이 불법 시술을 부추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외국의 입법 사례를 보면 태아생명 보호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한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제를 완화한 낙태 정책을 펼치고 있다.
여가부와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OECD 회원국 35개국 중 25개 나라가 본인이 요청하면 어떤 사유 없이 낙태가 가능하다. 네덜란드는 낙태 요청 기한에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 프랑스는 임신 12주 기간 내에서 곤궁한 상황에 처해있는 임신부는 의사에게 낙태를 요청할 수 있다. 의사는 임신부에게 낙태 후유증 등을 설명하고 임신부는 1주일간의 숙려기간을 보낸 후 최종 결정하게 된다.
또 독일은 낙태 처벌 규정을 두고 있지만 예외 사유를 인정한다. 의사가 임신부 생명 위험, 정신적·육체적 건강상태의 중대한 훼손 등의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경우 낙태는 위법하지 않다. 영국도 임신부의 생명이 낙태할 때보다 임신상태를 유지할 때 위험성이 더 크거나, 태아가 출생할 경우 심각한 장애에 이를 정도의 위험이 존재한다면 낙태시술은 처벌받지 않는다.
헌재는 오는 9월 이진성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해 김이수·김창종·안창호·강일원 재판관이 교체된다. 이 때문에
[채종원 기자 / 나현준 기자 / 부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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