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이 선거일을 목전에 두고 코 앞까지 다가와 지역 주민들을 괴롭히고 있다. 주택가와 시장 등 인구가 밀집한 지역을 유세차가 점거해 홍보용 연설과 음악을 틀며 소음공해를 일으키는가 하면 수시로 갓길 등에 주정차해 교통 혼잡까지 초래한다. 민주주의 가치 실현을 위한 선거도 좋지만 국민의 기본권이 심각하게 훼손당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선거 전 마지막 공휴일이었던 지난 10일 늦은 오후 서울 강서구 공항동. 유동인구가 많은 송정역 지하철 출입구 일대에 지방선거에 출마한 한 정당의 구청장 및 시의원 후보들을 지원하는 유세차 2대와 지원 인력들이 확성기를 통해 나오는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문제는 이 지역이 주택가가 역으로부터 50m도 떨어지지 않아 각종 고성·소음이 무방비로 집안까지 전달되고 있다는 점이다. 빌라 4층에 사는 이 모씨(61·여)는 "시끄럽지만 날씨가 더워 창문을 열어둘 수 밖에 없다"며 "그나마 예전에는 노래가 많이 나오지 않는데 요즘엔 가사만 바꾼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래를 큰 소리로 틀어대니 소음공해가 따로 없다"고 짜증을 냈다.
같은 건물에 싸는 박 모씨(72·남)는 일주일 째 잠을 뒤척이고 있다. 그는 "8시만 되면 잠이 드는데 선거일이 다가올 수록 확성기 사용이 더 잦아져 잠을 잘 수 없다"며 "소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직접 따지기도 했지만 '죄송하다. 이해해 달라'고 하는데 길거리에서 계속 화를 내고 있기도 민망하다"고 말했다.
한 무리가 지나가도 주민들은 고통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도지사·시장·구청장·시의원·구의원 등 각 지역 마다 십수명에 달하는 후보들이 차례로 홍보를 위해 줄지어 대기 중이기 때문이다. 세 살 배기 아이 엄마 이 모씨(34·여)는 "아기도 낮잠이나 밤잠을 자야 되는 시간이 있는 각 후보들이 돌아가면서 하루 종일 선거 유세 방송을 하고 있으니 어떻게 대처해야 될지 모르겠다"며 "노래나 확성기 소리라도 좀 작게 할 수 있는 기준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자영업자들도 선거 유세가 썩 반갑지 않다. 시끄러운 소음에 손님들이 달가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 양천구 목동오거리 인근에서 순대국집을 운영하는 강 모씨(58·여)는 "식당이라는 것이 손님들이 드나들기 편하도록 문을 열어놓고 영업을 하기 마련이지만, 유세차량들이 내는 소음때문에 손님들 불만이 끊이지 않는다"고 전했다. 강 씨의 점포는 교차로와 세 블럭 떨어져 있지만 교차로에서 나는 유세 소음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강 씨는 "가끔씩 이곳 가게들을 들러서 선거하는 후보들이 있는데, 그렇게 밉게 보일수가 없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서울시 화곡동 한 재래시장 입구는 불법 주정차 중인 유세 차량으로 인해 일대가 마비되다시피 하고 있다. 인도를 막아선 탓에 시장을 오고가는 상인과 손님들이 불편함을 겪는 것은 물론 주민센터와 도서관, 어린이집이 밀집된 주택가가 북새통이 되기 일쑤다. 실제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이달 들어서만 200여개 이상의 선거 운동 소음·불법주정차 규제 청원이 올라와 있다. 집중이 필요한 수험생들부터 야간 근무자들까지 확성기와 노래에 시름하고 있다.
선거철만 되면 나타나는 소음공해 문제는 매번 개선 요구가 빗발치고 있지만 아직까지 이를 규제할 장치는 마련되지 않고 있다. 공직선거법상 선거운동기간 휴대용 확성장치(오전 6시~오후 11시) 및 녹음기(오전 7시~오후9시) 역시 사용시간은 정해져 있으나 소리의 크기를 규제하는 기준은 따로 없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선거법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이끌어 내기 위한 법 저촉 여부를 살피기 때문에 선거운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리와 관련된 규정은 아예 없다"며 "소음이나 주정차 관련 문제는 다른 법률 상 위
공업·생활·교통소음을 규제하는 소음진동관리법의 경우 시간대와 지역별(주거·녹지·관광·공공) 소음 규제기준이 있다. 확성기 사용은 아침과 저녁, 야간 시간은 60데시밸(db·일반 야간 소음 40db) 이하로 규정돼 있다.
[이용건 기자 / 류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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