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 당시 사인을 쇼크사로 은폐하려 한 강민창 전 내무부 치안본부장이 지난 6일 별세했습니다.
박 열사 고문치사 사건은 지난 1987년 6·10항쟁을 불러온 결정적 계기가 된 사건입니다.
↑ 6·10 항쟁/사진=MBN |
당시 전두환 정권은 대통령 직선제를 거부하며 4.13 호헌조치를 선언했고 그해 1월 박 열사가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받던 중 고민 끝에 숨졌다는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 6·10 항쟁/사진=MBN |
박 열사 고문치사 사건이 도화선이 되었고, 전국에서 호헌철폐를 외치며 항의시위가 벌어졌습니다.
6월 10일 대규모 정부 규탄대회를 하루 앞둔 6월 9일, 연세대생 이한열 씨가 최루탄에 맞아 쓰러지면서 반정부 시위는 폭발적으로 확산됐습니다.
↑ 6·10 항쟁/사진=MBN |
결국, 당시 여당인 민정당의 노태우 대선후보는 6·29 선언을 통해 직선제 개헌을 약속했고 6·10 항쟁은 군사독재에 종지부를 찍은 한국 민주주의 분수령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당시 강 전 본부장은 박 열사의 사망 원인을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며 단순 쇼크사로 위장하려 했습니다.
↑ 영화 1987에서 강민창을 연기한 배우 우현/사진=MBN |
당시에는 경찰의 최고 수장을 치안본부장이라고 불러 지금의 경찰청장과 비슷합니다.
박 열사 고문치사 사건을 다룬 영화 <1987>에서 배우 우
우현 씨는 1987년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 집행부로 이한열 열사의 장례식과 49재 행사를 이끌었습니다.
우현 씨는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 파편을 맞았던 당시 집회 현장도 있어 영화 <1987>의 작은 배역이라도 하고 싶었다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