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사법부가 법관 해외파견을 늘리기 위해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와 외교부를 상대로 전방위 로비를 벌인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검찰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 당시 사법행정 수뇌부가 강제징용 피해자들 소송을 정부 입맛에 맞춰 미루기 위해 실제로 재판에 개입한 과정을 규명하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습니다.
오늘(5일) 사정당국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신봉수 부장검사)는 지난 2일 외교부 압수수색에서 임종헌 전 차장이 2013년 10월 말 청와대를 방문해 주철기 당시 외교안보수석과 강제징용 소송의 진행 상황과 향후 방향을 설명한 단서를 포착했습니다.
검찰이 확보한 두 사람의 면담 기록에는 이런 내용과 함께 임 전 차장이 주 전 수석에게 주유엔 대표부에 법관을 파견하도록 도와달라고 청탁한 정황도 담긴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는 2010년 끊긴 해외 법관파견을 재개시키려 애썼습니다. 2013년 2월 네덜란드 대사관을 시작으로 이듬해 6월부터는 주유엔 대표부에도 '사법협력관'이라는 이름으로 판사를 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법원행정처는 임 전 차장이 주 전 수석을 만나기 한 달 전인 2013년 9월 "청와대 인사위원회 접촉을 시도해야 한다"면서 당시 청와대 김기춘 비서실장과 이정현 홍보수석 등이 포함된 인사위 명단을 정리한 문건도 작성했습니다.
임 전 차장은 2015년 6월 당시 오스트리아 대사에게 이메일을 보내 "조태열 외교부 2차관을 만나 (징용소송에 관한) 의견서 제출을 협의했다"며 대사관 법관 파견을 청탁하기도 한 알려졌습니다.
법원행정처는 2006년부터 오스트리아 대사관에 판사를 파견보냈으나 2010년 끊긴 뒤 복구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실제로 외교부는 이듬해 11월 "양국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이 담긴 의견서를 재판부에 냈습니다.
검찰은 법원행정처가 법관 해외파견을 늘리기 위해 강제징용 피해자들 소송을 도구로 삼아 전방위 청탁을 하는 한편 대법원 담당 재판부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소송에 대한 외교부와 청와대의 입장이 사법행정 라인에서 담당 재판부로 어떻게 전해졌고 의사결정에 누가 관여했는지가 수사의 핵심으로 떠올랐습니다. 검찰은 전·현직 대법관들에게서 '자백'을 받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만큼 객관적 물증을 확보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검찰은 징용소송의 검토·처리 과정을 추적하기 위해 재판연구관들 PC 하드디스크 등 관련 자료를 임의제출해달라고 법원행정처에 요청했지만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2014년 2월부터 2년간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박병대 전 대법관의 하드디스크는 디가우징 방식으로 손상돼 복구가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다만 검찰은 당시 대법원 재판연구관들로부터 사건 배당이 지연되는 등 처리 과정에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다는 진술을 일부 확보했습니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수집한 정황 증거를 토대로 재판 관련 기록을 입수하기 위한 강제수사를 시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이미 지난 1일 법원행정처 국제심의관실과 의혹 문건 작성에 관여한 전·현직 판사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에 "대한민국 대법관이 일개 심의관이 작성한 문건에 따라 재판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례
검찰 관계자는 "문제가 되는 재판에 한해 재판연구관들이 어떤 문건을 작성했고 대법관들이 수정하거나 지침을 내렸는지, 법원행정처 문건이 전달되거나 영향을 미쳤는지 확인하기 위해 재판연구관 자료를 반드시 분석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