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제주도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할 꿈에 부풀었던 직장인 서 모씨(45)는 요즘 밤잠을 설친다. 제주시의 늑장 행정처리로 인해 자신의 계획이 물거품이 됐다는 생각 때문이다.
서씨는 "집을 지으려고 산 땅이 도로구역으로 편입된 지 15개월이 지나고 나서야 제주시에서 연락이 왔는데 이런 식의 개발이 어디 있냐"며 "도로구역 결정과 관련해 전혀 이야기를 전해들은 바가 없었기 때문에 토지 소유권자로서 의견을 개진할 기회조차 없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제주시가 땅 주인들에게 제대로 된 통보도 없이 도로를 만들 계획을 일방적으로 추진하면서 일부 토지 소유주가 반발하고 나섰다. 서씨는 2016년 4월 제주도에 토지를 구매했다. 3년 내로 그곳에 집을 새로 짓고 거처를 옮겨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려는게 당시 계획이었다.
그런데 제주시는 지난해 2월 서씨에게 갑작스런 소식을 통보했다. 서씨의 토지가 2016년 12월 시도29호선 확장·포장사업 시행에 따라 도로구역으로 결정됐으니 보상합의에 임하라는 것이었다. 이때까지도 '토지이용계획확인서' 상 서씨의 토지엔 별다른 규제사항이 기재되지 않은 상태였다.
특정 지역이 도로구역으로 결정될 경우 행정청은 이 같은 사실을 일반인이 열람할 수 있도록 토지이용규제정보시스템(LURIS) 등에 관련 지형도면을 고시해야 하지만 제주시는 이를 개별 문건으로만 처리하고 전산시스템에는 반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서씨는 토지이용규제정보서비스를 통해 자신이 소유한 토지를 조회하면서도 도로구역 편입 사실을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제주시는 행정 처리에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이다. 제주시 관계자는 "부동산종합정보시스템에 고시사항이 누락되긴 했지만 전산시스템에 관련 내용이 기재되지 않더라도 절차상 문제는 없다"며 "시도29호선 사업에 대한 도로구역 결정 당시 제주시는 시청 홈페이지뿐 아니라 관보, 공보물 등을 통해 지형도면을 고시했다"고 해명했다.
제주시는 또 시도25호선, 시도75호선, 시도77호선 등 3건의 도로사업에 대한 지형도면 또한 뒤늦게 전산시스템에 고시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시도75호선의 경우 2013년 5월 도로구역 결정이 났지만 이로부터 5년여 뒤인 지난해 10월이 돼서야 부동산종합정보시스템에 지형도면을 올렸다. 관련 규정에 따르면 도로구역 지정일로부터 2년이 지나도록 지형도면을 고시하지 않는 때에는 그 사업이
오동훈 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과 교수는 "현재 대부분 지자체들은 LURIS에 지목·지적 등 변경사항들을 곧잘 반영하는 추세"라면서 "해당 사항을 온라인 시스템에 반영하지 않고 공보물 등에만 게재하면 되는 옛날 방식은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문광민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