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소송 중인 아내와 3살 된 아이의 대화를 몰래 녹음하면 처벌 대상이 될까.
오늘(16일) 법조계에 따르면 40대 A씨는 2017년 이혼 소송 중인 아내가 거주하는 아파트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는 현관 앞에서 몰래 안에서 들리는 아내와 27개월 된 아이의 대화를 녹음했습니다. A씨는 5개월간 모두 11차례 몰래 녹음을 했습니다.
A씨는 이 같은 행각이 발각돼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하거나 듣는 것은 법으로 금지돼 있습니다.
A씨는 자신이 녹음한 내용은 아직 의사 능력이 부족한 딸에게 아내가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내용에 지나지 않아 통신비밀보호법이 보호하는 '타인 간의 대화'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법원은 그러나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아내와 3살 아이가 주고받은 말은 충분히 '대화'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서울고법 형사2부(차문호 부장판사)는 우선 "'대화'는 반드시 듣는 사람이 말하는 사람의 말에 이성적·논리적 대답을 하는 방식으로 이뤄질 필요는 없다"며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듣는 사람이 말하는 이의 말을 인식하고 그에 반응해 의사 표현을 하는 방식도 대화에 포함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같은 전제 아래 아이가 비록 완전한 의사 능력을 갖추고 있진 않지만, 엄마에게 짧게나마 의사 표현을 하고 엄마의 묻는 말에 긍정이나 부정의 반응을 보인 만큼 두 사람 사이에 '대화'가 이뤄진 게 맞다고 판단했습니다.
A씨는 설령 타인 간의 대화라 해도 아내가 딸을 학대한다는 의심이 들어 이를 막을 목적으로 녹음한 만큼 '녹음 행위'에 딸의 동의가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주장도 폈습니다.
재판부는 그러나 "피고인과의 관계에서는 아내뿐 아니라 아이 역시 '타인'에 해당한다"며 "미성년자인 딸을 위한 목적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그 녹음에 딸의 동의가 있었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음에 학대를 의심할 내용이 포함되지 않은 점도 주목했습니다.
재
법원은 다만 A씨가 범행을 반성하고 있고, 아이가 학대당한다는 의심 때문에 범행에 이르게 된 경위 등을 참작해 1심처럼 징역 6개월의 형 선고를 유예했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