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가 날짜를 잘못 계산하는 실수를 저지르는 바람에 부동산 가압류가 취소되면서 배당을 받지 못한 채권자에게 국가가 손해를 물어주라는 법원 판단이 나왔습니다.
재판부 결론에 당사자가 이의를 제기하며 소송을 거는 경우 대부분은 판사의 '판단 재량'이라며 기각됐지만, 절차상의 실수까지 '재량'으로 볼 수 없다는 취지입니다.
어제(2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민사1부(윤승은 부장판사)는 A 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한 1심을 뒤집고 국가가 A 씨에게 4억6천여만원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A 씨는 2013년 8월 말 G 사를 상대로 경기도의 한 건물에 가압류를 신청했습니다. 법원은 며칠 뒤 A 씨의 신청을 받아들여 가압류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에 따라 가압류 결정 기입 등기도 마무리됐습니다.
이듬해 4월 B 사는 가압류 등기를 말소하기 위해 법원에 A 씨에게 본안 소송 제기를 명령해달라'며 제소 명령 신청을 냈습니다. 하루빨리 본안 소송을 통해 가압류의 정당성을 판단 받아보자는 취지입니다.
법원은 A 씨에게 '제소 명령 결정을 송달받은 날부터 20일 안에 본안 소송을 제기하고, 이를 증명하는 서류를 제출하라'는 제소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에 따라 A 씨는 제소 기간 마지막 날 소송을 제기했고 그 증명서류를 법원에 냈습니다.
그런데 B 사는 A 씨가 기간 내에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다며 가압류 취소 신청을 냈습니다. 법원 역시 A 씨가 제때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다며 가압류 결정을 취소했습니다다. 제소 기간 만료일을 착각해서 벌어진 일입니다.
A 씨는 즉시 항고했고 두 달 뒤 항고심 법원은 1심이 제소 기간 만료일을 잘못 계산했다며 가압류 취소 결정을 뒤집었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가압류 취소 결정으로 가압류 등기가 말소된 탓에 경매 절차에서 배당을 한 푼도 받지 못한 것입니다. 건물의 일부는 이미 다른 사람 앞으로 넘어가기도 했습니다.
A 씨는 법관의 잘못으로 인해 손해를 입었다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1심 재판부는 담당 재판부의 잘못으로 가압류 취소 결정이 내려진 점은 인정했지만 국가가 배상책임을 지긴 어렵다며 A 씨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국가 배상 책임이 인정되려면 법관이 위법하거나 부당한 목적을 갖고 재판했다는 점이 인정돼야 하는데 A 씨의 경우는 단순 실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A 씨가 즉시 항고만 하고 가압류 취소 결정에 대한 효력 정지 신청을 하지 않아 경매 절차에서 배당받지 못한 만큼 국가로부터 구제를 받을 수 없다고 봤습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1심의 이런 판단을 뒤집고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서울고법 민사1부는 "담당 재판부의 잘못은 법관의 판단 재량에 맡겨진 법률 해석이나 법령·사실 등의 인식·평가의 영역에 속한 게 아니고 제소 기간의 산정이라는 비 재량적 절차상의 과오"라고 지적했습니다.
재판부는 "더구나 원고는 즉시 항고를 제기했으므로 담당 재판부로서는 잘못을 곧바로 인식하고 원심 결정을 경정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며 "이는 법관이 직무 수행상 준수해야 하는 기준을 현저히 위반한 경우에 해당해 국가 배상 책임이 인정된다"고 판단했습니다. 효력 정지가 이뤄지지 않은 것을 A 씨의 잘못으로만 돌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재판부
재판부는 다만 A 씨에게도 40%의 책임은 있다고 보고 청구액 7억8천여만원 중 60%인 4억6천여만원만 국가가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