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년 전 받은 돈은 공소시효 만료?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과 관련된 각종 의혹을 수사할 '법무부 검찰 과거사위원회 수사권고 관련 수사단(이하 수사단)'이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갔습니다.
수사단이 가장 먼저 살펴보는 의혹은 '뇌물'입니다.
김 전 차관 측은 뇌물 수수에 대해 부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김 전 차관이 건설업자 윤중천 씨로부터 뇌물을 받은 정황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구체적으로는 '2005년부터 2012년까지' 금품과 향응을 받았다고 볼 수 있는 관련자들의 진술을 확보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문제는 공소시효와 돈의 액수입니다.
일단 2012년에 돈을 받았다면, 뇌물죄 공소시효는 7년이어서 김 전 차관에 대한 수사와 처벌이 가능합니다.
뇌물액수가 3천만 원 이상인 경우에는 '특정범죄 가중처벌에 관한 법률'(특가법)이 적용됩니다.
3천만 원 이상이면 공소시효가 10년, 1억 원 이상이면 15년으로 늘어납니다.
여기서 '1억 원 이상'일 경우는 일단 제외하겠습니다.
과거사위원회가 밝힌 금품과 향응 액수가 '수천만 원 상당'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10년 전에 뇌물을 받았다면 공소시효도 끝났고, 처벌도 불가능할까요?
■ 진상조사단 '포괄일죄 법리' 고려한 듯
'포괄일죄 법리'를 적용한다면 10년 전 뇌물이라도 공소시효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김 전 차관 사건을 살펴본 진상조사단은 2005년부터 돈을 주고받은 정황이 있다고 밝혔는데 '포괄일죄 법리'를 고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포괄일죄 법리란, 2005년부터 2012년까지 띄엄띄엄 돈을 줬더라도 모아서 하나의 뇌물로 보고, 공소시효 시작 시점도 2012년으로 보는 겁니다.
물론 법원에서 모든 사건에 대해 포괄일죄 법리를 인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뇌물과 관련해 포괄일죄 법리를 인정한 2015년 대법원 판결문을 살펴보겠습니다.
'수뢰죄에 있어서 단일하고도 계속된 범의 아래 동종의 범행을 일정기간 반복하여 행하고'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즉, 같은 목적으로 같은 방법으로 돈을 줬다면 '한 덩어리'의 뇌물로 볼 수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돈을 줬더라도 그 목적이 다르고, 방법도 다르다면 법원 판단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돈이 오고 간 사례별로 법원이 그 경위를 따져보고 유무죄를 결정하게 됩니다.
고등학교 동창에게 돈을 받고, 그 대가로 수사 관련 편의를 봐준 혐의로 재판을 받은 김형준 전 부장검사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검찰은 김 전 검사를 2015년 5월부터 2016년 3월까지 고교 동창 '스폰서'에게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합니다.
검찰은 향응과 현금을 합쳐 5천만 원 이상을 받았다고 판단했고, 합계 금액이 3천만 원 이상인만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을 위반한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이를 하나의 죄로 보지 않고 향응과 현금에 대해 각각 따지게 됩니다.
법원은 향응 가운데 1천만 원 정도를 뇌물로 인정해 특가법이 아닌 형법상 뇌물수수죄를 적용했습니다.
■ 진경준 사건에서도 '포괄일죄' 가로막혀
포괄일죄 법리와 관련해 눈여겨봐야 할 또 다른 사례가 진경준 전 검사장 뇌물 사건입니다.
검찰은 진 전 검사장이 김정주 NXC 대표로부터 넥슨 주식과 차량, 여행경비를 받은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넥슨 주식을 받은 시점은 2005년, 차량을 제공받은 시점은 2008년~2009년, 여행경비 수수 시점은 2005년~2014년입니다.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건 2016년 이어서 넥슨 주식과 관련된 혐의는 공소시효가 지난 시기였습니다. (참고로 2007년 형사소송법이 바뀌며 뇌물에 대한 공소시효가 늘었습니다. 넥슨 주식의 경우 개정 전 형사소송법에 따른 공소시효가 적용됐습니다.)
그래도 검찰은 하나의 죄로 보고 기소를 했습니다.
법원은 검찰이 주장하는 '포괄일죄'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차량 제공과 여행경비는 뇌물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직무관련성과 대가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입니다.
검찰은 넥슨 주식의 공소시효 문제를 차량 제공과 여행경비로 해결하려 했지만, 검찰 논리가 먹혀들지 않은 겁니다.
법원은 넥슨 주식에 대해선 따져볼 것도 없이 공소시효가 끝났다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 10년 전 받은 돈 처벌 가능성은 50%
정리를 해보자면, 김학의 전 차관 사건의 경우 (진상조사단 추정대로 실제로 돈을 주고받았다면) 10년 전 뇌물에 대한 처벌 가능성은 '반반'입니다.
수사단은 2005년부터 2012년까지 동일한 목적으로 같은 방법으로 돈을 줬다는 것을 입증해야 합니다.
만
공소시효가 끝나지 않은 '마지막 주고받은 돈'의 성격도 관건입니다.
이 돈의 직무연관성, 대가성이 입증되지 않으면 10년 전의 다른 돈은 공소시효가 끝났으니 유무죄를 다툴 수도 없게 됩니다.
수사단 앞에 까다로운 고차 방정식이 놓여진 셈입니다.
이권열 기자 [ 2kwon@mb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