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훈 극지연구소 박사가 세계 펭귄의 날을 맞아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출처 = 그린피스 제공] |
강연자가 말을 끝맺기도 전에 여기저기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빔프로젝터 화면에 얼어 죽은 펭귄 사진이 나타나자 탄식 소리는 더욱 거세졌다. 화면이 바뀌고 어미에게 먹이를 달라고 조르는 새끼 펭귄 동영상이 재생되니 이번엔 앓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한 여성은 "귀여워"라며 어쩔 줄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흡사 펭귄 팬클럽 모임처럼 보이는 이곳은 다름 아닌 '세계 펭귄의 날' 축제를 맞아 열린 강연 현장이다.
그린피스·시민환경연구소·환경운동연합 등 국내 환경단체는 지난 25일 세계 펭귄의 날을 맞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일대에서 펭귄의 서식지인 남극해 보호를 촉구하는 행사를 개최했다. 행사는 펭귄 옷을 입고 춤을 추는 댄스 퍼포먼스와 김정훈 극지연구소 박사의 강연 '어쩌다 펭귄' 등으로 구성됐다.
이번 행사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졌다. 아이와 함께 손을 잡고 현장에 방문한 주부도 있었다. 40명가량의 시민들은 이날 오전 거센 바람에도 펭귄 옷을 차려 입고 준비한 율동을 선보였다. 이들 뒤에는 '남극해를 펭귄에게 양보해주세요'라고 적힌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나이도 직업도 모두 다른 이들이 한자리에 모인 이유는 단 하나, 사라져가는 펭귄의 터전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 터전 잃고, 먹이 줄고, 얼어 죽고…'3중고'에 빠진 펭귄
↑ 김정훈 극지연구소 박사가 촬영한 남극 펭귄의 사진이 세계 펭귄의 날 축제 현장에 전시돼 있다. [사진 출처 = 이유현 인턴기자] |
매년 이맘때가 되면 어미 펭귄은 새끼 펭귄에게 줄 먹이와 터전을 찾기 위해 남쪽에서 북쪽으로 떠난다. 때로는 뒤뚱뛰뚱 걸어가면서, 때로는 헤엄을 치면서 목적지까지 도달한다. 종일 움직이면 최대 120km까지도 이동할 수 있다. 먹이를 찾고 나면 다시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와 새끼 펭귄의 입에 먹이를 넣어준다.
하지만 최근 급격한 환경 변화로 펭귄들의 기나긴 여정이 험난해지고 있다. 빙하가 녹으면서 이동 경로가 파괴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원인이다. 지난해 과학자들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992년 이후 25년간 약 3조t의 빙하가 녹은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최근 들어 그 양이 급격하게 증가해 1992년부터 2011년까지 연평균 760억t 녹은 반면, 2012년부터 2017년까지 연평균 2410억t이 녹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이상 기온으로 남극에 눈 대신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서 펭귄의 생존 가능성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특히 새끼 펭귄은 솜털에 방수 기능이 없어 비에 몹시 취약하다. 어미가 먹이를 찾고 돌아와도 이미 추위에 얼어 죽어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뿐인가. 이제는 먹이를 찾는 것도 일이다. 펭귄은 주로 갑각류 동물성플랑크톤인 '크릴'을 먹고 산다. 크릴은 펭귄 이외에도 범고래, 물범 등 해양 생물들의 유용한 먹이 역할을 하며 해양 생태계의 평형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지구 온난화가 가속화되고, 1960년대 크릴 조업이 시작되면서 그 수가 크게 줄었다. 더욱이 최근 크릴을 오일 형태로 압축한 '크릴오일'이 건강식품으로 인기를 끌자 조업은 더욱 활발해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오늘날 펭귄들은 터전과 먹이까지 빼앗기며 오갈 데 없이 굶주리는 신세가 됐다.
실제로 세계자연기금(WWF)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서식하는 펭귄 17종 중 10종이 멸종 위기종이거나 취약종에 속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학자들은 현 상태가 지속될 경우 2100년까지 크릴이 20%에서 최대 55%까지 사라질 수 있으며, 황제펭귄의 개체 수도 99%까지 줄 것으로 예측했다. '펭귄 없는 펭귄의 날'을 맞이하는 순간이 올 수도 있다는 뜻이다.
◈ "남극해를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해야"
↑ 시민 40여명이 댄스 퍼포먼스를 마친 뒤 '남극해를 펭귄에게 양보하세요'라고 적힌 현수막을 펼치고 한국 정부에게 남극 해양보호구역 지정에 나설 것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 출처 = 그린피스 제공] |
해양보호구역은 해양 생명체의 다양성을 보존하기 위해 인간 활동을 금지하는 해역으로, 전 세계 바다의 2%에 불과하다. 이곳에서는 어업, 과학실험, 관광 등 개발·이용 행위가 제한되기 때문에 해양 생태계의 평형이 유지되며 회복력도 강화된다. 시민들이 펭귄 옷을 입고 춤을 추며 "남극해를 펭귄에게 양보해달라"고 외친 이유다.
같은 맥락에서 국내외 환경운동가들은 현재 펭귄의 남은 개체를 보존하기 위해 남극해를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입을 모아 주장하고 있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2016년 열린 세계자연보전총회(WCC)에서 2030년까지 전 세계 바다의 30%를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하자는 내용을 담은 결의안을 채택했다. 같은 해 아델리펭귄의 32%, 황제펭귄의 26%가 서식하는 남극 로스해가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그러나 아직 추가로 보호가 필요한 지역이 남아있다. 남극해는 물론 웨델해, 동남극해 등 해양 생물이 주로 서식하는 지역이 해당한다. 2017년 그린피스와 국내 환경단체들이 남극 웨델해를 해양보호구역 지정 대상으로 요청했지만 조업 활동을 주요 경제활동으로 삼는 일부 국가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특정 바다를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하기 위해서는 매년 10월 열리는 남극해양생물자원보존위원회(CCAMLR) 연례회의에서 25개 회원국의 만장일치 동의를 받아야 한다. 단 한 곳이라도 반대 의사를 표명하면 해양보호구역으로 인정될 수 없다.
이에 국내 환경단체는 올해 열리는 10월 회의에서 우리나라가 찬성표를 던져 해양 생물 보호에 기여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세계 펭귄의 날 행사를 총괄한 그린피스 박샘은 캠페이너는 "공해는 누구의 소유도 아니기 때문에 모든 국가가 나서서 보존해야 한다"며 "우리나라도 회원국으로서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주길 바란다"고 지적했다.
이날 김정훈 박사는 강연을 마친 뒤 몇 분간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이때 한 시민이 "왜 생태계를 보호해야 하느냐"는 원론적인 질문을 던졌다. 김 박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우
[디지털뉴스국 이유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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