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이 해외에 남겨둔 450억원 가량의 자산을 상속받고도 신고하지 않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조남호 한진중공업홀딩스 회장(68)과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61)에게 각각 벌금 20억원 판결이 내려졌다. 벌금형이 선고됨에 따라 조정호 회장은 메리츠금융지주 사내이사직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서울남부지법 형사12단독 김유정 판사는 26일 국제조세조정에관한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조남호 회장과 조정호 회장에게 벌금 20억원씩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계좌 존재를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선친 사망 후 5년간 신고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수년간 신고 의무를 회피한 것은 죄질이 가볍지 않다"고 지적했다. 다만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범행을 인정한다"며 "조남호가 20년 전 벌금형을 선고 받은 것 외에는 피고인들이 별다른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다는 점을 참작했다"고 설명했다.
법원이 벌금형을 내림에 따라 조정호 회장은 메리츠금융지주 사내이사로 계속 활동할 수 있게 됐다. 현행 금융회사지배구조법에 따르면 금고형 이상의 판결을 받은 사람은 금융회사 임원이 될 수 없다. 조정호 회장 측은 이에 "집행유예를 받더라도 임원직을 상실할 수 있다"며 벌금형으로 선처해줄 것을 재판 내내 요청한 바 있다.
앞서 서울남부지검은 지난해 10월 조양호·남호·정호 형제가 선친인 한진그룹 창업주 고(故) 조중훈 회장의 스위스 계좌를 상속받고도 세무당국에 신고하지 않았다며 벌금 20억원의 약식명령을 청구했다. 해당 계좌에는 450억원 상당의 자산이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약식명령은 상대적으로 경미한 사건에 한해 정식 재판을 열지 않고 서류 검토만 한 뒤 처벌을 정하게 하는 제도다. 그러나 남부지법은 심리를 다뤄봐야 한다며 이 사건을 정식재판에 회부했다. 법원은 다만 지난 4월 별세한 조양호 회장에 대해서는 지난달 공소기각 결정을 내렸다.
[이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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